박휴용 저.『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의 포스트휴먼 학습론』서평
‘인간이 세계를 다루는 방식’ 즉, 인류 중심주의적 시각으로 지식을 다뤄왔던 지금까지의 교육은 어떤 사회를 만들어냈는가. 인본주의의 ‘인간 범주’는 종, 성별, 인종, 계급 등의 타자화로 각종 편견을 만들어냈고, 과학적 합리주의는 에너지, 환경, 기후 문제 등과 같은 생태 위기를 일으켰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인간만이 아닌 모든 존재들을 함께 고려하여 세상을 이해하자는 관념을 제시한다. 탈인본주의를 지향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에 기반한 지식관은 “지구 상의 모든 존재들의 가치를 인간과 동일하게 인정하고(객체지향 존재론), 모든 비-인간적 존재들의 네트워크적 상호 얽힘과 공존의 차원(행위자망 이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비 대표성 이론) 지식을 목표”로 한다.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의 포스트휴먼 학습론』은 이와 같이 ‘포스트 휴먼적 지식관’을 바탕으로 기존의 인본주의적 지식관과의 비교를 통해 앞으로 변화가 필요한 인간 소통방식과 학습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저자 박휴용 교수는 교육학 분야 저서『융합지식과 융합교육과정』, 『포스트휴머니즘과 교육의 미래』로, 2018년, 2020년 두 차례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에 선정된 이력이 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도서인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의 포스트휴먼 학습론』의 구성은 총 5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순서대로 <지식, 기술, 그리고 포스트휴먼에 대한 이야기>, <포스트 휴머니즘 기반 학습>, <정보화 사회와 인공지능>, <포스트휴먼 사회에서의 학교교육과정의 변화>, <미래의 기술적 변화와 학습의 혁명>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기술 혁명 시대의 교육을 재정립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포스트 휴먼적 지식관’을 언급하고 있으며, 교육자와 학습자의 변화된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포스트 휴머니즘 지식관이 필요한 이유
지금까지 ‘인간’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봤던 편협한 관점은 인간과 다른 모든 존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불러오지 못했다. 이성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정의와 계몽주의는 모순적이게도 동물과 정도의 차이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세계대전, 전쟁, 약탈, 신자유주의적 양극화와 환경적 재앙이 보여주는 것은 인본주의의 부정적 측면들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동물이면서도 동물성을 넘어서고, 물질적이면서도 정신적이고, 사회적 동물이면서도 지극히 이기적이며, 도구와 함께 진화하였으면서도 완전히 기계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존재인 것이다.” 포스트 휴머니즘에 기반한 지식관은 이러한 인간의 모순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서 출발하였다. ‘인간이 과연 자신의 경험에 대한 순수한 해석과 반추를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심과 더불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지식의 양과 기술 활용으로 더는 인본주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21세기 기술적 매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는 인간과 사물, 그리고 모든 비-인간적 존재들과의 ‘상호 얽힘’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즉,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된 생태적·기술적 환경에서 인간-사물의 생태적 관계망을 살펴보고, 각 존재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포스트 휴머니즘 지식관이 필요해진 것이다.
포스트 휴먼 학습자에게 필요한 교육
인터넷의 발달로 유통되는 방대한 정보와 지식은 학문 간 경계를 완화했고, 검색 엔진의 등장은 학습자의 다양한 필요성에 의해 정보를 추출할 수 있게 되었다. 포스트 휴먼적 학습방식의 목표는 단순히 뇌에 지식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망 속에 정보와 자원을 탐색하여 의미를 파악하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디지털과 모바일 통신 문화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나 네트워크 세대는 포스트 휴먼적 학습을 이행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포스트 휴먼적 학습은 “다양한 학습의 주체들이 온라인 네트워크 상에서 동등한 지위와 역할을 가지고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이루어지는 집단적이고 분산적인 교류에 의해 이루어지는 학습”이기 때문에 포스트 휴먼적 학습자는 과거 교수학습에서 주지된 수동적인 학습자의 모습을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대신 비인간적 존재들 (사물, 기계, 도구, 동물, 환경 등)과의 상호의존성에 기반한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그러한 존재들과 공생과 공존을 모색하며 탐색하고 경험하며 성장해나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학습자는 전자도서관과 데이터 베이스를 검색하거나,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교사 및 동료들과 토론하고, 디지털 형식의 학습결과물을 제출할 수 있다. 좀 더 나아가 설계, 디자인, 제작 및 검토 과정에서 각 단계에 필요한 여러 컴퓨터 프로그램과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해 작업을 수행할 수도 있다. 포스트 휴먼 학습자는 이렇게 자신의 관심사와 비인간적 사물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익혀 능동적인 경험을 하며,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관계성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자의 역할은 단순 중개자가 아닌 학습과 평가의 매개자이다.
이제 일방적인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사의 역할은 불필요해졌다. 그동안 교사는 학생에게 특정 지식에 대한 관점을 주입하는 형식의 교육을 해왔다. 하지만 교사는 이제 ‘가르치려고’하는 대신에 “관찰자로서, 카운슬러 혹은 공동 학습자, 공동 경험자”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교사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여 성적을 부여하기 위해 객관적인 시험문제를 내고, 단순히 성적을 입력하는 중개자 역할은 과거 교육자의 모습이다. 대신에 여러 환경적, 기술적 도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인적 연결망(교사 학부모 위원회), 제도적 연결망(학부모 청원, 교육청 민원 등), 기술적 연결망(Nais 시스템, 인공지능 평가 시스템, 빅데이터 활용)이 구축되면 다양한 교육 행위자들이 평가에 공동개입을 하는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이는 교육과정에 따른 학습 목표와 내용을 교사 교과서, 교육매체, 동료학생, 학부모들과 함께 다양하게 경험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학업성취를 평가하고 점검하는 것이다. 관습적인 교육 양식에 대한 의존을 버리고, 다양한 지식의 형태적 양식(문자, 영상, 소리 등)을 다채로운 표현의 장르(음악, 시, 소설, 그림, 몸동작 등)으로 전환시키는 교육을 할 수도 있다. 또한 물질, 에너지, 자원, 그리고 쓰레기들의 성질, 변화, 가공, 재활용 등을 고민하는 것이 과학 수업이나 기술 수업의 주제가 될 수 있고, 이러한 물질이 사회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 이해하는 것이 수업의 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교육자는 학습자들과 함께 네트워크 구조에서 다양한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로써의 경험을 느끼는 적극적인 매개자가 될 수 있다.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학습자가 세상의 만물들과 관계 맺음을 통해 그들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관계 맺음의 과정에서 모든 사물은 능동성을 가지며 다른 사물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코로나 19의 확산은 이러한 면에서 사물이 학습에 주는 영향력을 알 수 있었다. 과거의 학교라는 공간과 그곳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비대면 학습에서 사물과 기술 매체가 단순히 수동적 도구가 아니라, 인간 학습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학습의 공동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책에서 지속해서 언급되는 포스트 휴먼적 학습은 학습자와 교육자로 하여금 인본주의적이었던 과거의 교육관을 성찰하게 하고, 앞으로의 상호 연결적인 학습에 대해 이해하고 대비할 수 있게 하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독자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관념의 뒤에 숨어, 우리가 인간의 지식권력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며, 생태환경과 기술과 ‘함께 살기’를 고민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