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창비, 15,000원) 서평
"사람들은 완전한 변화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작은 선택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뒷다리살을 먹는다면 돼지의 전체 사육 마릿수를 줄일 수 있다. 자연 양돈 방식으로 기른 돼지고기를 먹는다면 돼지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고기 섭취량을 줄인다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 우리의 선택으로 조금씩 바꾸어 나갈 수 있다."
동물복지, 자연 양돈과 같은 방식의 ‘대안 축산’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에는 이동호 저자가 귀촌 후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마주하고, 친환경 농부를 꿈꾸게 된 과정이 담겨있다. 저자는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있는 농촌을 상상하고 28세에 귀촌하였지만, 하필 최대 축산단지였던 그곳에는 분뇨 냄새와 파리가 가득했다. 동네의 공장식 축산에 문제의식을 느낀 저자는 사람들과 함께 채식을 시작하고, 뜻이 같은 젊은이들과 ‘대안 축산 연구회’를 결성하여 유기 축산과 유기농 농사에 대해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생명을 먹는 일을 마주해 보고 싶어 졌고, 채식주의자는 결국 세 마리 돼지를 유기축산 방식으로 키우고 잡아먹음으로써 ‘육식과 채식이라는 경계’에 답변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대안 축산이라면 육식주의자도 구원받을 수 있겠다..!’
이 책은 2020년 카카오 브런치의 ‘제8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으로,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돼지를 키우는 이야기, 2부는 돼지를 잡아먹는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저자는 2019년 한 농업학교에서 태어난 지 백일 된 돼지 세 마리를 분양받았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돼지 사육 지역에 살던 저자였지만, 돼지를 본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안아서 들어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백일 돼지들은 생각보다 컸고, 무서웠다. 대안 축산 연구회 친구들의 도움으로 부랴부랴 돼지를 새로운 보금자리로 데려온다. 돼지는 땅을 파며 놀기 때문에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준다. 잠자는 공간인 트레일러와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수영장도 구분해 마련한다. 실제로 돼지는 개보다 아이큐가 높으며, 자는 곳과 배변하는 곳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연 양돈으로 길러지는 돼지는 밀집 사육 때문에 꼬리와 송곳니가 잘리고, 고환이 적출되며, 움직일 수 없는 ‘스톨’에 갇혀 임신과 출산만을 반복하는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된다. 호흡기 치료제, 호르몬제, 항생제 등 온갖 약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 덕분에 저자의 돼지들은 농가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먹으며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랐다. 돼지 삼 형제는 농촌에서 박멸의 대상인 풀도 먹고, 사람이 먹지 않는 오디와 벌레 먹은 자두, 고구마 쭉정이, 상처 난 감자 등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건강하게 커가는 돼지를 지켜보며 뿌듯해하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저자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돼지를 잡아먹어야 했다. 완전한 채식과 동물복지에 든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이다. 8개월간 돼지를 기르면서 혹여나 정 붙을까 봐 일부러 돼지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도 않았다. 반려동물과 가축의 경계선에서 돼지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먹고 잘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했지만, 돼지를 잡아먹는 일은 더 쉽지 않았다. 돼지를 기절시키고 도축하는 일을 직접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돼지를 직접 기절시키는 일만은 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생명을 망치로 내려쳐 생명을 해치는 행위에 대한 거북함이 느껴졌다. 돼지도 생각이 있고, 피가 흐르고, 숨을 쉰다는 그 동질감이 거부감이 되어 나를 압도했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 돼지를 기절시켰다. 돼지의 갈라진 비명은 저자의 온몸에 흐르는 혈류에 파동을 일으켰다. 산업식으로 돼지를 잡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망치로 돼지를 잡는 일에 죄책감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분명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생명을 거두는 것에 관한 책임’ 말이다. “그렇다면 도축장에 맡겨둔 우리의 책임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 책임은 외면하면 그만인 책임인 걸까?”
도축하는 일은 여러 나라에서도 기피하는 직업이다. 우리가 먹는 때깔 고운 고기는 이렇게 연속되는 살생과 양심의 가책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우리의 식단에 등장하는 고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보이지 않는 일.”을 볼 수 없게 가리고 있었다.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기에 우리는 마음 편하게 육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고기를 더 싸게,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 육식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도리어 불편한 존재가 된다.”
저자는 8개월 간 돼지를 직접 기르고 먹는 과정에서 동물복지도 결국 사람을 위한 ‘생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단순히 먹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 서로가 고귀해질 수 있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싶었다. 과거 가축과 인간이 지난 수천 년간 평화롭게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직접 도축을 해야만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고, 채식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고기의 이면을 모르는 사람들이 저자가 직접 생명을 다룬 경험에서 함께 책임감을 느껴주길 바랬다.
“고기는 3분 요리처럼 ‘띵동’하고 나오는 게 아니니까...”
과거부터 기후위기와 연관된 ‘축산’의 문제는 지속해서 언급되고 있었지만, 이제야 ‘자연 양돈’과 ‘채식’이라는 대안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빈도가 늘어났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도도 높아졌다. 하지만 평자를 비롯해 많은 주변인들은 여전히 고기 식단에서 벗어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육식 소비가 우리 주변 일상에서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고기 메뉴를 팔지 않는 곳은 아직도 드물고, 하물며 단체생활을 하는 학교 급식이나 기숙사, 회사 구내식당에서도 하루 한 끼는 무조건 고기반찬이 나온다. 대학생인 평자도 채식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여러 번 비건에 도전했으나, 단체생활을 하는 교내 기숙사에서 미리 돈 내고 먹는 ‘의무식’을 먹지 않고, 따로 돈을 들여 채식하는 것은 부담이 되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와 함께 하는 식사에서 ‘나, 비건 하려고.’라는 말은 꺼내기 쉽지 않았고, 비건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 나는 여전히 익숙한 고기 식단을 씹고 있다. 그렇다. 나는 매번 비건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안일한 비건 지향 주의자다. 완전한 비건을 하는 데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지금은 플렉시 테리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게으른 비건 지향자는 하루빨리 공간적·경제적 독립을 통해 혼자일 때 비건 레시피를 즐겁게 만들어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비건 레시피에 ‘이런 것도 있다.’고 공유할 수 있기를 꿈꾼다.
이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는 책을 덮은 후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일 거라는 확신은 든다. 미래 독자는 동물복지와 채식에 관심이 있거나, 관심은 있지만 아직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 그리고 자연 양돈에 관심 있는 축산업 종사자 정도로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더 욕심을 부려 환경과 동물복지에 관심 없는 사람도 포함시켜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배출의 18%를 차지한다는 보고도 있었다. 당시 자동차 비행기 등 모든 교통수단에서 나오는 걸 합쳐야 13.5%였다.” 이런 심각한 사실에 평자 또한 당장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권의 책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채식 지향자가 된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