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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유부남, 나 홀로 도쿄 일주일 #15

마지막 돈코츠라멘 & 굿바이 도쿄!

by 김트루

도쿄 솔로 여행 8일 차 아침, 현재 시간 8시 53분. 이번 여행 마지막으로 보는 도쿄 스카이트리다. 11시 50분에 나리타 공항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만큼 정신이 없는 상황이긴 해도 마지막 인사는 해야지.


사실 6시에 일어나 아사쿠사의 유명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려 했건만, 어젯밤 돈키호테에서의 쇼핑이 길어지며 숙소에 늦게 도착한 탓에 또 늦잠을 자버렸다(그나마 비행기 시간에는 늦지 않게 일어난 것이 천만다행).


공항행 급행으로 환승했다. 캐리어를 든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많이 보이는 구간.


기내용 캐리어 하나만 가져온 탓에 가방이 터져나가려 한다. 텀블러와 목베개 역시 꺼낸 뒤 가방끈에 묶어서 가져가는 중.


다시 도착한 나리타공항. 1일 차에 점심을 먹었던 도토루 카페가 보이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다른 곳에서 더 맛있는 점심을 먹으리.


수화물로 맡길 짐이 없기에 바로 수속을 진행하고 탑승장 내부로 들어왔다. 위층에 식당이 있으니 얼른 가서 밥을 먹자.


돈코츠라멘집 발견. 출발까지 딱 1시간 밖에 남지 않은 만큼 구글맵에서 이 가게가 맛있는지, 없는지를 찾아볼 시간 따윈 없다.


한가로이 메뉴를 고를 시간도 없다. 그냥 돈코츠라멘 주세요.


5분여의 기다림 끝에 나온 라멘(정말 5분이 15분처럼 느껴졌다). 비행기 탑승까지 50분밖에 남지 않은 터라 음료수 마시듯 입에 털어 넣었다. 너무 정신이 없었기에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밥을 너무 빨리 먹어버려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버렸다. 지갑에 남은 엔화를 빠르게 털자.


결국 면세점과 자판기에서 종이학 마그넷, 먹을 것들을 사서 남은 엔화를 다 썼다(오른쪽 사진 맨 우측의 코스타커피의 경우 그냥 일반적인 페트병 라떼 맛인데, 오드리 헵번의 얼굴을 붙여놓은 것 치고는 그 얼굴값을 전혀 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어느덧 비행기 탑승 시간.


이번 도쿄여행, 참 즐거웠다. 그간 많은 여행을 다녔고, 그 모든 여행들이 다 즐거웠지만 정말 현실을 완전히 잊은 채, 가슴 속에 품고만 있던 낭만들을 고스란히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니었나 싶다. 혼자서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경험은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로웠기에 즐거웠던, 정말 꿈같은 8일이었다.


하지만 이젠 현실로 돌아갈 때다. 언제까지고 여기에 머물며 여행자라는 신분에 만족해 있을 순 없으니까. 이 정도로 스스로가 여행자에 불과함을 자각한 것은 처음이다. 과거 유럽이나 미국을 갔을 때는 몸이 정말 고되고 힘들었음에도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는데, 이렇게나 스스로가 귀국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할 줄이야(어쩌면 와이프를 더 기다리게 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압박 때문일지도...).


이번 자리는 엔진 바로 옆자리다. 항상 날개의 뒷부분 좌석에 앉았었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앞쪽에 앉게 됐다. 좀 시끄럽긴 할 것 같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자면 잠은 잘 올 듯.


아. 생각해 보니 카와구치코에서 자전거 타다가 왼쪽 이어폰을 잃어버렸었구나. 그날의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어떻게 잊었는데...


어느새 하늘에 뜬 비행기. 넘실거리는 뭉게구름을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혀본다.


어... 자세히 보니 후지산이네. 여전히 정상에 눈이 안 쌓여있어 아쉽지만, 그 높이와 크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비행기에서도 뚜렷하게 형체가 보일 정도이니.


사실 카와구치코에서는 안개가 살짝 끼어있어 제대로 보이지가 않아 아쉬웠는데, 이렇게라도 깨끗한 모양새를 보고 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무려 후지산에게 배웅받는 남자가 됐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꽉 채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는 지금. 할 일을 다 했다 생각하니 그제야 눈이 감겨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한국. 익숙한 통로다.


익숙한 한국어, 밀려오는 아쉬움. 이런 걸 보면 여행에 중독돼도 단단히 중독된 것 같다.


입구로 나오니 저 멀리서 와이프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온다. 발그레 상기된 귀여운 볼따구.


'그래, 제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어려울지언정 역시 내가 있을 곳은 여기야'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갑작스레 혼자서 여행을 떠나겠다는, 다소 무모했던 결정을 너그러이 이해하고 묵묵히 지원해 준 가장 든든한 내 편. 저 사람을 위해서라도, 이번 여행에서의 추억을 벗 삼아 이전보다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야지 싶다. 내가 여행을 떠났던 이유도 결국 우리 둘이 함께, 남은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아낼 원동력을 얻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여보, 나 왔어.

보고 싶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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