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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Aug 24. 2020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일의 나는 또 그 누구보다 내 역할에 충실하겠지?



유난히 따듯했던 봄 햇살, 흐드러졌던 벚꽃잎, 쏟아지는 비를 뚫고 출근한 동료끼리 서로의 무사함에 안도하며 주고받는 인사,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을 밟던 발끝의 느낌, 초록 잎이 어느덧 빨갛고, 노랗게 물든 것을 보며 새삼 시간의 빠름을 느끼던 순간, 추운 겨울 따뜻한 카페에 들어선 순간 내 몸을 노곤하게 감싸주던 온기, 곱씹을 추억을 나누어 가진 친구들과 같이 기뻐하고, 울어줄 수 있는 가족.



이 모든 따뜻한 조각들을 쥐고도
 이따금 이대로 잠들어서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한다.


거창한 무언가를 이룬 건 없지만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맛있는 걸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며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 속에서, 동시에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여행 가고 싶다 생각하다가도, 

분홍빛의 석양을 보며 마음이 평온해지다가도 문득…. 문득... 그냥 이대로...


너무나 자연스레 죽고 싶단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마음이 나의 어디서부터 피어오르는 건지, 내 모든 감정과 감각기관들은 태생부터 고장이 난 건 아닌지.


유난히 나에게 엄격한 잣대를 갖고 살기 때문인 걸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냥 사라지고 싶다. 

동시에 내일 출근 걱정을 하지만, 내일의 나는 또 그 누구보다 내 역할에 충실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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