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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Aug 02. 2020

첫 만남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친구와 먹은 점심이 유난히 소화되지 않아 약을 사 먹고,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희주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와 볼링 치러 가는데 같이 가자며, 집 근처로 갈 테니 전화하면 나오라고 했다.

이제 막 집에 들어온 나는 나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소화도 안 되는데 볼링을 치고 나면 조금 나아질까 싶어 알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전화가 울렸고, 집 근처 조명가게 앞으로 나갔다. 시커먼 차의 조수석 창문이 지잉 소리를 내며 내려가더니 희주 언니의 얼굴이 나타났고, 나는 뒷좌석에 올라탔다.


“앗.. 친구래서 여자분인 줄 알았는데”라고 말하는 내게, 희주 언니는 여자나 다름없는 오빠라며 그를 소개했다.

“둘이 인사해. 오빠, 여기는 나랑 같이 일하는 동생 온설이. 온설아, 나랑 같은 기수 재승 오빠.”


어색하게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그는 내비게이션에 볼링장을 입력했고, 가장 가까운 볼링장으로 차를 몰았다. 지는 사람이 게임비를 내자는 말에 나는 악착같이 공을 굴렸다. 억척스럽게 공을 굴리긴 했지만, 성큼성큼 걸어가서 쿵 쿵 던지고 오는 바람에 볼링장 바닥에 금이 가는 건 아닌지 괜스레 카운터에 있는 직원의 눈치가 보였다.


‘아… 이놈의 운동신경 진짜…’


결국 어설픈 볼링 실력은 한 번의 스트라이크를 끝으로 나를 꼴찌로 이끌었다. 신발 반납과 게임비를 내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고, 재승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제가 계산했어요. 목마를 텐데 이거 드세요.”

그는 내게 음료수를 건넸다.

“왜 계산하셨어요. 제가 졌는데…”라고 말하는데 옆에서 희주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오빠가 동생들한테 돈을 내게 하냐고 자기가 냈대. 맥주나 한잔 하러 가자. 그럼 맥주는 온설이 네가 사.”


우리는 볼링장을 나와 희주 언니의 집 근처 펍으로 갔다. 미닫이로 되어있는 펍의 문은 담배를 피우러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꾸만 열렸다가 닫혔고, 그럴 때마다 밖에 있는 가로등 불빛에 눈이 부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다. 그는 맞은편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내게 말했다.


“그 자리 불편하면 나랑 바꿔요. 눈부셔서 힘든 것 같은데.” 그는 일어나 자리를 바꿔 주었다. 그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제야 제대로 된 통성명을 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열심히 볼링을 치고 왔는데도 더부룩한 속 때문에 대화에 집중하기 힘들었고, 아침부터 돌아다니다 볼링까지 친 탓에 피곤해서 연신 나오는 하품을 참으며 앉아있었다.


맥주를 거의 다 마셔갈 때쯤 희주 언니는 자리를 옮겨 한 잔 더 하자고 했고, 그만 가야겠다는 내게 재승은 오래 있지 않을 거니 가볍게 한 잔만 더 마시고 가자 했다. 마지못해 근처 횟집으로 끌려온 나는 맥주 한잔을, 희주와 재승은 오징어 회에 튀김과 소주를 주문했다. 가볍게 마시자는 그들의 말을 믿고 따라왔는데 시키는 안주를 보니 가볍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재승은 내 앞에 놓인 접시에 이제 막 나온 오징어튀김을 올려주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는 입맛을 자극했지만 치아교정 중이라 질긴 오징어 튀김을 가위 없이 앞니로 끊어 먹을 수 없어 쳐다만 보았다. 게다가 그때까지도 속이 더부룩해 입에 대지 않았다.

그는 “왜 아무것도 안 먹어요. 튀김이 커서 그래요? 잘라 줄까요?”라며 가위를 가져와 튀김을 먹기 좋게 잘라주었다. 우리는 계속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스노보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보드를 탈 줄 모른다는 내게 재승은 자신이 가르쳐 주겠다며 다음 주 주말에 같이 보드를 타러 가자고 했다.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같이 보드를 타러 가자고...?’ 속으로 생각했고, 부담스러워 대답을 회피하는 내게 재승은 자꾸만 같이 가자며 나를 설득했다. 술김에 하는 말이겠지 싶어 “네~네”하고 얼버무렸다.


그날의 만남은 대리기사의 등장으로 마무리되었다. 제일 가까운 희주 언니를 먼저 내려주고, 나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재승은 말했다.

“우리 진짜 보드 타러 가요. 희주 안되면 저랑 둘이라도 가요. 약속해요.” 조수석에 앉아있던 재승이 몸을 돌려 뒷좌석에 앉아있는 나를 향해 새끼손가락을 불쑥 내밀었다.

‘아, 자꾸 무슨  보드를 타러 가재...’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불편해 보이는 자세와 손가락이 민망하진 않을까 싶어 마지못해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 주었다.

‘술 마시고 하는 말 같은데 진짜 같이 가자고 하진 않겠지? 가자해도 희주 언니한테 말해서 일 있다고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오늘 즐거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라고 말한 뒤, 차에서 내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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