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버터를 못 먹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창원에서 왔습니다. 제빵사를 했었고요. 빵집을 차리려 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일단은 접었어요. 버터 공부는 남편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버터를 못 먹습니다. (알레르기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느끼한 걸 못 먹는다. 까르보나라도...)"
오늘은 한 달 전에 예약했던 버터클래스에 다녀왔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버터를 주제로 한 강의가 많이 없어서 지난번 무염버터와 플레이버 버터를 만드는 클래스도 구글에 검색하고 별도로 요청한 끝에 들을 수 있었다. 더욱이 강의가 있어도 대부분 서울에서 열려 지방 사람으로서는 그런 기회를 접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뵈르누아제트(버터로 굉장히 유명함)' 인스타 계정을 운영하시는 버터 강사님께서 대구에서 클래스를 연다는 소식에 바로 신청했고, 오늘이 그날이었다. 강사님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버터 전문가 중 한 분이시다. 이미 클래스 101로 강사님의 클래스를 들었으나, 버터에 대해 더 깊이 있게 공부해 보고 싶어 신청하게 되었다.
복잡한 대구 뒷굴목 어느 자그마한 카페에서 클래스가 열렸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페 사장님과 강사님께서 한창 준비 중이셨다. (내가 1등으로 왔다!) 아늑하지만 굉장히 힙한 카페였다. 나를 포함해 약 10명의 수강생들이 앉을 테이블 위에는 오늘 테이스팅 할 8가지 종류의 버터들이 놓여있었다.
한 분, 두 분 수강생분들이 다 모였고, 자기소개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창원에서 왔습니다. 제빵사를 했었고요. 빵집을 차리려 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일단은 접었어요. 버터 공부는 남편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버터를 못 먹습니다. (알레르기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느끼한 걸 못 먹는다. 까르보나라도...)"
아마 살면서 이렇게 많은 버터를 먹어본 건 오늘이 처음일 것이다. 8종류의 무염버터를 1시간 넘게, 아니 수업이 끝날 때까지 테이스팅 했다. 정말 힘들 거라고 예상했지만(힘들긴 했다.)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제대로 된 맛을 느끼기 위해 과자도 먹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버터의 맛을 음미했다. 이건 가볍게 고소하구나 이건 굉장히 시고 사워도우 맛이 나는구나 이건 요구르트 상한 맛이 나는구나 이건 치즈맛이 나는구나...
사실 빵집에 다닐 때도 그렇고 집에서 빵을 만들 때도 그렇고 항상 한정된 버터만 사용하다 보니 버터 브랜드별로 맛이 이렇게까지 다를 줄은 몰랐다. 8종류의 무염버터 맛은 전부 다 달랐다. 특히 발효버터들은 각각의 독특한 맛을 가지고 있었다. 과일맛이 나는 것도 있었고, 사워도우를 먹는 느낌이 나는 버터도 있었다. 버터마다 정말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버터 외에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배운 것은 '열정'이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름 클래스도 듣고 집에서 버터도 만들어 봤으니 어느 정도 버터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다른 수강생 분들을 만나고 나니 내가 가장 무지했었구나를 깨달았다.
이미 맛을 보면서 '아 이 맛은 이 브랜드군요'라는 것을 캐치한 분도 계셨고, 버터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단순한 맛표현을 넘어 자신의 요리에 어떻게 쓰이면 좋겠다 까지를 염두하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다. 또, 자신이 만든 버터를 직접 가지고 와 테스트를 하는 분까지...
그동안 자만했었구나. 이 시장이 그렇게 큰 시장이 아니라고 여겨 나름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구나. 대표적인 버터 브랜드의 맛조차도 모르고 있었구나... 고로 다시 시작해야겠다. 플레이버 보다도 무염부터 다시 공부해야겠다 근본부터 다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클래스는 다양한 측면에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버터 브랜드별로 맛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무엇보다 버터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고 정말 진심을 다해 열정을 가지고 몰입하는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나 또한 처음부터 제대로 깊게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