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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돌 Dec 19. 2018

희망연봉을 깎습니다.

처음 회사를 나오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다시 구직활동을 할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희망연봉, 혹은 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을 기재하라는 칸이었다. 대기업에 지원할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항목이었다.


"많을수록 좋습니다. 최대한 많이 주세요."


이런 답을 원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정말 감이 없었다. 다른 직종으로의 지원이었기에 이 분야에서 연봉 수준이 어떤지, 2-3년의 짧은 경력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이 얼마를 제시해야 적절한지를 유추하기 힘들었다.


우선은 희망연봉을 전 직장 연봉의 70~80% 수준으로 작성하여 지원해보았다. 2개 회사에서는 전혀 연락이 오지 않았고, 1개 회사에서 연락이 와 면접을 진행했다. 사장님은 나를 마음에 들어했으나 연봉 부분이 걸린다고 하셨다. 상관없으니 내규에 따라 달라했고, 최종 연봉 협상은 전 직장 대비 50% 정도로 결정되었다. 업계에서는 많이 주는 편이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이유는 연봉일 것이다. 잡코리아에서 발표한 설문중, 퇴사를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 1위가 '낮은 연봉'(50%)이라는 통계가 있다. 연봉이 높아지면 보상심리로 인해 만족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은 연초 성과급이 나올 때마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급격히 높아진다. (2분기부터 다시 급격히 하락하지만.)


그렇다면 연봉이 반으로 토막 난 나의 반대 경험은 어떠했을까.


물론 몇몇 밤을 새우는 야근이 이어질 때는 이런 생각이 턱끝까지 찰 때도 있었다.

'이 월급 받고 이런 미친 업무량이라니... 당장 저 문을 걸어 나가고만 싶구나.'


1/3 사이즈로 줄어든 집과, 점점 미니멀해지는 라이프스타일을 바라보며 이전의 단란했던 쇼핑백들과의 추억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월급을 이전 직장 수준으로 올려주겠다 했음에도 거절하고 나온 점과, 돈을 더 못 버는 스타트업 창업 이후 더 즐겁게 오래 버티며 일을 한 점을 보면, 지금 나에게 있어서는 연봉이 만족도를 의미하지 않음이 분명했다.


깨달아 가건데, 나에게 일에 있어 만족도를 주는 가장 큰 것 2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사람

2. 성장가능성


두 번째 직장이었던 작은 기획 회사는 월급도 적었고 조직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이전에는 접점이 없었던 다양한 경력의 사람들 - 디자이너, 작가, 영상제작자, 다양한 창작자들과 일하면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나 생각하는 방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했다. 한 곳을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다음 스텝을 항상 고민하는 사람들이었고 적절한 자극을 주었다. 게다가 여기서 2명의 동업자를 만났으니,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스타트업을 운영할 때 연봉은 '마이너스'였다. 생활비를 위해 따로 알바를 해야 했지만 일에 대한 만족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일단 일이 재밌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내가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계, 재무를 공부하고 마케팅 멘토링 수업을 듣고 다양한 대표들과 경험담을 공유하며 매번 새로운 것을 고민하는 시간이 나의 비전을 높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직접 '결정'한 다양한 일의 결괏값을 받아보며, 다른 회사들의 결정과 행보를 살펴보며 1년마다 일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갔다. 돈은 다 까먹었고, 사업은 실패했지만 일했던 시간에 대해서는 만족하는 이유다. 




일에 있어서 연봉은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일에 대한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정립하는 일이 아닐까. 


- 친구 A는 빨리 목표하는 돈을 모아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지금 직장에서 업계 대비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그에게 만족감을 준다.


- 친구 B는 워라밸이 중요하다.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 그림도 배우고 운동도 다니는 저녁 있는 삶을 살고 싶어 업무시간과 업무량을 고려해 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성장가능성을 찾아 연봉을 깎아오는 것을 감내하는 중이다. 투자 단계다. 차차 지금 시간에 대한 성과를 왕창 돌려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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