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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휴자 Apr 03. 2023

계산할 때 바코드를 위로

사소하지 않은 사소함 #4

한때 아침 출근길마다 편의점에 들러 빵을 샀었다. 아침식사인 셈. 갈 때마다 어떤 빵을 고를지도 매번 고민이었다. 하루의 시작에서 맞닥뜨리는 이 선택의 기로는 귀찮으면서도 꽤 재밌는 일이었다. 이런 생활이 점점 루틴이 되니 선택의 기로는 없어지고, 내가 집는 빵의 종류도 한두 가지로 좁혀졌었다.


이 루틴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은 더블 미니파운드란 빵이 있다. 이 빵 맛이 참 좋다. 익히 알고 있는 파운드케이크 딱! 그 맛이다. 기대했던 맛을 그대로 입안에 채워주니 만족감이 좋다(내 입맛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 편이라 혹 드셔보신다면 이 점을 꼭 염두에 두세요). 부드럽고 적당히 달달하다. 케이크 위에는 꼬맹이 견과류 몇 개가 차분히 박혀 있다. 부드럽고 달달한 빵 속에서 소소한 식감과 함께 은은한 고소함을 입안에 선사해주는 고마운 조연이다. 조심할 게 한 가지 있는데, 케이크를 중간 매개체 없이 바로 집으면 미끌미끌한 기름이 손에 조금 묻을 수 있다. 되도록 종이나 티슈를 사용해 빵을 집는 게 좋다. 제품에 유산지가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한 면이 있다.


자, 이제 빵 얘기는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해보자. 빵을 집고 계산하러 갈 때를. 루틴처럼 빵을 구매하다 보니 빵을 계산대에 올려둘 때 언제부터인가 바코드를 위로 향하게 뒀었다. 포장지를 최대한 빳빳하게 해서 바코드 스캐너가 바코드를 더 빠르게 찍을 수 있게. 바코드가 찍히고 계산이 쾌속으로 이루어지면 나름 뿌듯하다(혼자 멍청한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표정을 잘 챙겨야 할 텐데). 처음에는 효율을 극대화하고 싶은 손 빠른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 보니 이건 배려의 마음, 기술인 것도 같다. 아침 편의점은 다들 바쁘니까. 점원에게도 손님들에게도 빠른 계산은 여러모로 배려인 셈이다.


이와 비슷하게는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뒤에 사람이 얼마 안 되는 거리에 있으면 문을 잠깐 잡아준다. 또,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찬 버스에서, 누군가가 교통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카드를 대신 받아 찍어주기도 한다. 내가 여유가 될 때라면.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윤리의식 뭐 그런 걸 떠나서, 그냥 이게 더 '기분이 좋으니까'로 결론 내렸다. 배려를 하면 기분이 좋고, 상대는 도움을 받아 좋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무언가 부조리한 위화감을 풍기는 이 문장이 완벽히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곳이 ‘배려’의 영역이지 않을까.


또, 좋은 일을 하게 되면 운이 상승한다는 믿음, 일종의 *럭(Luck) 작업도 ‘배려’의 행동을 하게 되는 요소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나의 경우에). 이상한 생각일까. 맞다, 이상하다. 아, 여기서 믿음은 굳건한 믿음이라기보단 '어려운 거 아니니 하지 뭐.' 정도다. 내 마음의 위안을 주는 조그마한 행동이라고 봐도 좋다.

*럭(Luck) 작업이란 말은 예전에 RPG 게임 같은 것을 할 때 종종 썼었다. 게임 속 다양한 능력치 가운데 '운' 능력치를 본격적으로 쌓는 작업을 말한다.


그런데 나의 이런 이상한 생각과 비슷하게 생각한 유명한 선수가 있지 않은가? 놀라서 자빠지진 않고, 간단하게 그 선수를 소개해 본다. 물론, 난 유명한 선수도 대단한 사람도 아니지만.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오타니가 작성한 만다라트 계획표>


그 선수는 이번 2023 WBC(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로 알게 된 실력도 인성도 완벽한 ‘오타니’라는 선수다. 오타니는 고등학생 때 만다라트 기법을 활용하여 자기관리를 했다고 하는데, 이 표 가운데 하단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게 바로 '운'이란 항목이다. 만다라트 기법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8가지 목표를 적어놓고 그 8가지를 이루기 위해 세부사항을 적어놓은 계획표다. 오타니는 이곳에 '운'이란 항목을 적어놓고 그 항목 주변으로 '운'이 상승할 만한 행동을 적어놓았다. 인사하기, 쓰레기 줍기, 부실 청소, 물건을 소중히 쓰자 등이다.


아니! 이런 완벽한 선수가 했던 생각이니, 꽤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나름 멋진 생각을 마음속에 키우고 있었구나 하고 으쓱해본다. 으쓱해하며 혼자 멍청한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표정을 잘 챙겨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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