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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게 더 많은 아이

정서적 퇴행

by JinSim


"준표야~ 우리 이거 해볼까?"

"으으흑~ 으흐흑~"


준표의 표정이 변한다. 동글하고 반질한 얼굴이 미간부터 찌뿌러든다. 한 발을 쾅쾅 바닥에 구르며 싫다는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한다. 이내 엉덩이까지 들썩이고 겅중겅중 자리에서 온몸을 펄쩍인다. 붓을 내밀고 있는 나의 손을 낚아채듯 손에 쥐고는 힘을 준다. 꼭 자신에게 무엇을 시키는 내 손을 부숴버리겠다는 기세다.

기세에 눌리면 안 되겠다 싶어 엄한 표정으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제재를 해본다.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준표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이 상황이 너무 힘이 든 건지 자신의 뺨을 스스로 찰싹찰싹 때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참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준표야, 준표하고 싶은 거 하렴. 선생님이 좀 더 기다려줄게..."

백기를 들었다. 이젠 힘도 어찌나 세었는지 물리적인 제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소매로 콧물을 쓰윽 닦고는 플라스틱 장난감 조각들을 부딪치며 준표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감각적인 자극만을 추구한다.






여전히 준표와 만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준표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적극적으로 배워보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요즘 들어 매사에 시큰둥하다. 지어 격렬하게 수행을 거부한다.


그사이 준표의 일상에 변화가 있었다. 활동보조선생님이 바뀐 것이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양육환경이 바뀌다 보니 다시금 불안감이 엄습했나 보다.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은 준표의 할머니는 활동 보조선생님도 통제하고 싶으신지 활동 보조선생님에게 사사껀껀 참견을 하신단다. 선생님도 할머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하소연이 길어진다.


"아니, 과자 조금 먹였다고 어찌나 난리인지, 자기들은 애 차에 태우자마자 마*쮸 입에 바로 넣어주더구먼! 그게 당이며 나트륨 더 많고 몸에 안 좋은 거 아냐?!

애가 피곤해해도 낮잠을 재우지 말래! 잠 오면 잠투정을 얼마나 하는지, 오늘 선생님한테 떼쓴 건 평소에 나랑 둘이 있을 때랑 비교하면 아주 얌전한 거예요! 애도 나도 얼마나 힘든데! 자기들은 편하겠다고, 나를 아주 골탕 먹일 심산인거지! 전부 맘대로 라니까!"


하교 후 활동보조선생님 집에서 케어를 받고 있는 준표는 치료실에서보다 더 통제하기 어렵다며 준표의 공격성과 돌발행동에 어려움을 표한다. 격양된 활동보조선생님의 음성이 점점 높아지고, 내가 선생님 많이 힘드시겠다고 위로를 했다가 아이의 케어와 상태에 대한 상담시간에 아이의 존재는 사라지고, 할머니의 험담과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양육자의 스트레스도 케어해야 하는 게 내 일이기는 하지만, 내내 신경은 대기실에 준표로 향한다.


시간 동안 준표는 대기실에 방치되었고,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찰싹찰싹 치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기세가 대단했는지 대기실에 다른 어머니들이 아이를 달래 보려 했지만 준표는 이미 무척 흥분한 상태라 심지어 낯선 어머니들의 그런 달래는 말들이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활동보조선생님은 준표에게 가지 않고 뒷거름질 치더니, "이럴 땐 가까이 가면 안 돼, 위험하다니까~" 다른 엄마들에게 이 아이가 얼마나 난폭한지 보란 듯이, 자신의 고충이 얼미나 심한지 보란 듯이 멀찌감치 앉아 다가오는 준표에게 손사래를 치며 밀어내고 있었다.

준표에게 잠이 오냐니 끄덕이는 걸 보니 잠이 올 때 하는 잠투정 같았는데, 함께 가야 할 활동 보조선생님이 아이의 의사를 무시하고 가자는 제스처를 하지 않으니 잠은 오고 당황스럽고 불안이 엄습했으리라 여겨졌다. 준표에게 울음을 멈추어야 집에 갈 수 있다고 한참을 진정시켜보려 해도 듣지를 않았다. 다른 내담자 어머니들이 약간은 원망 섞인 톤으로 다른 친구들 공부하는데 여기서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고 한소리 하자 활동 보조선생님은 아이를 달래며 집에 가자고 말했다. 준표는 울음을 그치지는 못했지만 벌떡 일어나 활동 보조선생님을 따라 치료실을 나섰다.


아이가 원한 건 그저 집에 가고 싶었던 건데, 어른들은 끝까지 아이를 몰아붙이고는 통제한다.


준표는 '안 되는 게 더 많은 아이'다.





인간의 발달은 크게 신체발달, 인지발달, 정서발달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균형 있게 발달하는 것이 정상 발달이라 할 수 있고, 발달 장애라는 진단을 받은 아이들은 이 발달이 지연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다. 나는 삼각형에 비유해서 설명하는데, 성장이란 점점 커다란 정삼각형으로 밸런스를 맞추어 커나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하나의 영역이 발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다른 영역들도 연결되어 있어 발달하기 어렵다. 아이들은 각 시기별로 획득해야 하는 중요한 제들이 있는데, 그 과제들을 순차적으로 성공하고 자신의 것으로 습득하며 성장해 나간다.


준표는 정서발달의 중요한 시기들을 놓친 것으로 보이고, 그로 인해 다양한 영역의 발달이 지연된 것으로 보인다.

학습의 효율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안정감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정서라는 영역이 보이지 않고 뭔가 수치적인 결과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크다 보니 등한시되고, 모르고 중요한 시기를 지나쳐 버리기 일쑤이다. 그렇게 삼각형은 치우쳐지고 연결된 다른 성장을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준표에게 양질의 정서교류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치료사로서는 알겠지만, 어떤 방법으로 양육자들에게 전달해야 할지 늘 어려움을 겪는다.


오늘도 나는 조금 무기력하게 준표를 보내고,

자책의 시간을 갖는다.

'발달심리학'책장을 넘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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