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의 소리

인생 책?

by JinSim


니가 정말 신나게 몰두해 본 게 뭐야?
니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뭐야?



답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끝까지 파고들고 몰두한 게 있었나?

잘할 수 있을 만한걸 선택하고, 어느 정도 재미있게 즐기고, 어느 순간 실증이나 그만두기를 반복한다. 가슴 떨리게 기대되고 신나는 게 뭐가 있었는지 당최 떠오르질 않는다. 힘들어도 꼭 하고 말아야 했던 게 있었던가? 취미 삼아라로 음악, 미술, 운동,... 어느 하나 제대로 해본 게 없다. 늘 나 스스로 '이 정도면 됐어' 라며 제한선을 긋고 브레이크를 밟는다.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게 없나?

오히려 주변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렇게 해보겠냐고 권유를 해도 나는 요지부동이다. 마음으론 갈등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어려운 불안요소들을 먼저 찾고 있다. "이건 이러이러한 상황으로 어렵다." "이리이리 하면 완성하지 못할 거야~" 늘 일을 크게 벌이는(?) 사람들에게 한계점을 제시하는 그런 입장이 되어있다. 객관적인 관점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을 쓰고...

꿈을 꾸고 그 길로 열심히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참 멋지다고 부러워하기만 하고 뒤늦게 그 길을 그저 따라가려 한다.


두려움?

내 마음과 행동에 대한 책임.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언제부터 두려움이 내 발목을 잡게 되었지?

책임지지 못할 일을 만들지 말자.

말이건 행동이건...

무의식 중에 나를 짓누르는 그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중고등학교 시절 만화책을 정말 좋아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만화책을 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공부는 안 하고 만화책만 들여다본다는 게 어머니의 표면적인 이유였겠지만 그것만이 아닌 그녀의 개인적인 감정이 건드려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저 미숙하기 그지없는 데다 조금씩 나만의 생각이란 걸 시작하는 시기였을 뿐이다. 나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몰래 만화책을 보는 걸 선택했다. 그때가 나의 사춘기였나 보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내 주장을 할 수 있는 힘이 없었고, 심지어 내 주장을 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표정이나 말소리의 뉘앙스를 잘 알아채었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학습이 되었던 것 같다. 알면서 모른 체 예민하지만 무던한 체를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어쩌면 나의 욕구는 어머니가 원하는 방향과 많이 달랐기에 비밀리에 욕구를 채워야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한창 만화책을 읽고 소장을 하는 게 유행 같았다. 만화잡지가 있었고, 연재되었던 만화들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단행본을 기다리며 매일 동네서점에 들러 언제 나오는지 물어보는 게 일과가 되었다. 용돈을 모아서 단행본을 사 모으는데 다 써버린 것 같다. 학교에 새로 구입한 신간 만화책을 들고 와서 서로 돌려 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내 뒷자리 영이가 이번에 나온 신간을 구입했다며 자랑을 했고, 부러움의 눈빛을 쏘아대었더니 기꺼이 내게 빌려주었다.

친구가 빌려준 만화책을 소중히 집으로 들고 와 내 방에서 읽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녀의 잔소리가 꽤 길어졌다. 언제나처럼 나는 입을 닫고, 마음을 닫고, 외부의 자극들을 애써 차단해 버렸다. 입을 닫아버린 내가 못마땅해서였을까? 그녀는 내가 읽고 있던 만화책을 뺏어 들고는 내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게 아닌가!

그녀의 태풍처럼 강력한 분노는 어디에서 온건지도 모른 채, 갈기갈기 찢어지는 친구의 책을 넋 나간 얼굴로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침묵이 그녀에게 분노폭발의 트리거가 되었나 보다.


공포, 당혹감, 억울함, 수치심, 분노, 슬픔, 원망,...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몰아쳤다.

하지만,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장악되었다.


'친구의 책이었는데...'

그 뒤로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명확한 기억이 없다.


그저 그녀의 고함소리와 괴팍하게 찢겨나가던 책만 머릿속에 윙윙 남아있다. 그때 느꼈졌던 불쾌한 감각들만 선명하게 살아있다.


'내 마음 대로 하면 안 되는 거구나, 욕심을 내면 안 돼!'


사춘기의 트라우마는 내 기억들을 왜곡시키기에 이르렀다.

힘들고 아픈 기억은 깊이깊이 묻어두고 잊어버리라고...


그때부터였을까? 의욕은 들끓었지만 결정하고 선택함에 주저함이 많아졌다.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그때의 기억은 이제 와서 누구에게도 설명되거나 이해되거나 사과받을 수 없다. 그저 내 무의식 어딘가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욕심내지 마!" "안될 거야!"라며 경고음을 전달하기만 할 뿐이다.


일련의 사건만으로 내가 많은 것을 억누르며 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에 꽂혀서 앞만 보고 무작정 신나게 달려가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긍정적 의미에서는 신중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허울 좋은 포장같이 느껴진다. 어줍잖은 이유들을 대며 그저 피하고 있는 것을...

글로 남기면서도 계속 머뭇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라도 내 안에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바로 말할 수 있도록 꼼꼼히 들여다보고 찾아봐야겠다.

쉽지 않겠지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