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동네 배달을 해보자
웨이트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주 3회 꾸준히 하며 근력을 회복 중이다. 문제는 스쿼트 마지막 세트에서 숨이 딸리는데, 유산소 운동은 영 취향이 아니다.
내 발은 선천적으로 아치가 높은 요족에 엄지가 휘는 무지외반증이다. 어느 날 할머니의 발이 똑같이 생긴 걸 보고 볼멘소리를 했다. 정형외과에서는 치료법이 따로 없으니 가급적 오래 걷거나 달리지 말고, 자전거는 괜찮다 하셨다.
실내 자전거를 타면 잡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운동 끝나면 누구한테 연락하고 그 자료도 보내야겠다. 저건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혹여 할 일을 잊을까 휴대폰에 적으며 타면 길어야 15분. 숨이 찰 듯 말 듯 할 때 그만 두어 버린다.
문득 배민 커넥트가 생각났다. 이사한 집 바로 앞에 따릉이 정류장이 있고 근처에 음식점도 많다. 앱을 켜니 배달 건이 수두룩. 지도상에 픽업 수가 hexagonal heat map으로 표시된다. 인터페이스가 궁금해서 걸어서 배달하는 온라인 교육을 이수하고 시험도 봤었다. 수동자전거로 모드를 바꾸자 금방 배차가 들어왔다.
첫날은 좌충우돌이었다. 픽업 후 신나게 출발했는데 자전거 길이 없었다. 거친 보도블록 위 세차게 흔들리는 콜라를 보며 폭탄을 제조해서 죄송했다 (그래도 치킨은 따뜻했어요). 짧은 거리에 괜찮은 배달료가 산정된 곳이 있어 얼른 수락을 했는데 엄청난 오르막이었다. 자전거로 오르려고 애쓰다가 나중에는 자전거를 질질 끌고 헐떡이며 흐엉어어엉 올랐다. 그렇게 도착한 언덕 위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가 있었다. 양손에 B마트 물건을 가득 들고 계란이 깨지지 않게 조심하며 계단을 올랐다. 경력 많은 배달원 분들이 배차를 안 받으셔서 나에게 차례가 왔던 모양이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내리막은 아주 상쾌했다.
한 곳에 도착할 즈음이면 인근에서 조리 중인 다른 건의 배차 수락 요청이 들어온다. 바로 뒤에 다른 배달이 잡히니 마음이 급해져 호다닥 배달하게 된다. 낯선 길을 찾아, 낯선 가게에서 배달 번호를 확인한다. 한 번에 두 건을 픽업하면 도착지에서 바뀌지 않게 더 신경쓰고, 벨을 누를지도 확인하고 사진도 찍어야 한다. 그 와중에 다음 배차도 확인. 아주 정신이 없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총총 뛰면 어느새 훌쩍 한 시간. 퇴근 후 잠시 동네를 돌면 겨울에도 땀이 나고 머리가 비워진다.
몇 번 해보면서 너무 가파른 곳은 피하고, 자전거 도로를 파악하고, 너무 고층에서는 엘리베이터에 한 쪽 신발을 끼워 잠깐 잡아두고, 언덕 있는 대단지는 지하 주차장을 공략하는 노련한 배달부로 성장했다.
그렇게 재미를 붙인 어느 날 뜻밖의 시련이 찾아왔는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