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를 걸고 맡은 프로젝트에서
일과 돈을 동시에 잃었다
2022년, 당시 회사에서 맡은 일은 고객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문제는 나도 월급이 밀렸다는 거다. NFT 프로젝트의 매니저로 일했는데, 암호화폐 시장도 회사 사정도 모두 암울했던 탓이다. 내 사업인 것처럼 백방으로 노력해도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는 것까지 감당할 재간은 없었다. 월급도, 투자금 정산도 밀리면서 내 처지는 안팎으로 힘들어졌다.
결국 프로젝트는 엎어졌고, 한동안 내 주 업무는 고객들이 빨리 정산금을 달라고 흥분할 때마다 ‘죄송하다’, ‘조금 있으면 정산금이 나온다’며 사과하고 일이 커지지 않도록 무마하는 일이었다. 항의와 읍소로 가득 찬 하루하루가 세 달이 넘도록 이어졌다. 당시에는 그리 힘든 줄 몰랐다. 왜였을까. 비록 월급은 못 받아도 하던 일은 마무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크립토 업계에 영영 뛰어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2017년 ICO가 일으킨 코인 투자 광풍이 불었을 때만 해도 관심을 안 두었으니까. 당시는 투자보다 사업으로 돈을 버는 게 더 빠를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2020년 코인과 NFT 열풍이 불던 때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투자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순조롭게도, 물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잘할 줄 알았는데 똑같은 패턴으로 물렸다.
강제 ‘존버’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블록체인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역시 인간은 직접 당해봐야 제대로 배운다. 공부를 하다 보니 막연하지만 이 업계가 성장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여기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믿음도 함께. 이때부터 주변에 만나는 사람마다 블록체인 얘기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다니던 회사에서도 NFT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서, 평소 틈만 나면 블록체인 얘기만 하던 내가 프로젝트 매니저(PM)를 맡게 되었다. 당시에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단순히 반짝하고 끝나는 유행이 아니라 미래에 계속 쓰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 미래가 아직 오지 않았고, NFT 열풍은 반짝하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시장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PM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업계가 유망하면 뭘 하나. 결국 월급도 다 정산받지 못한 채로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미래가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성취한 것도 없이 백수가 되었다. 커리어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사기다, 스캠이다 등등 인식이 좋지도 않은 분야에서 일하다가 흐지부지 끝나버린 커리어에, 투자로 잃어버린 잔고를 바라보니 인생의 내리막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블록체인은 여전히 욕심이 났다. 더 공부해 보고 싶었다. 여기에 내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잃은 게 더 많지만, 희망도 여기에 있다고 믿었다. 이번엔 제대로 알고 투자해야지. 본격적으로 매일 블록체인 관련 블로그와 트위터를 들락거리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막했다.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이 짠!하고 나타나 나를 도와줄 리는 없으니까.
그렇게 막막한 심정으로 블로그를 보던 어느 날, 논스(nonce)라는 주거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다. 논스에 블록체인에 미친 사람들이 모여 있단다. 매일같이 블록체인 연구 논문을 들춰보고, 블록체인으로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라며. 심지어 내가 블록체인을 무시했던 2017년에 이미 강남에 모여 블록체인 공부하던 사람들이 만든 커뮤니티란다. ‘내가 찾던 곳이 저기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당장 살던 곳을 정리하고 나오기에는 고민이 됐다. 1인 가구로 혼자서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코리빙 하우스라니. 잘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주거지를 옮기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라 고민이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혼자 있는 생활에 익숙해진 게 문제였다. 너무 편하면 결국 제자리에 머물게 되니까. 마치 태어난 동네에서만 평생 살아온 사람처럼 시야가 좁아진다. 늘 가던 곳에 가고, 만나던 사람을 만나면 항상 생각하던 방식대로 생각하느라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잘못 보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가면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새로운 곳에 나를 던졌을 때 감각이 열리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래서 환경을 바꾸기로 했다. 여러 사람들과 같이 지낼 때의 장점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여럿이서 해커톤 참가했다가 떨어졌다고 해보자. A라는 사람은 며칠 내내 침울한 반면, B는 의연하게 대처하고 다음 해커톤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20명쯤 있으면 자연스럽게 내가 스트레스에 얼마나 민감한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알게 된다.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 내 장점도 알게 된다. 나에게는 너무 쉽고 당연한 일을 주변 사람이 힘들어하는 걸 자주 발견한다면, 이게 내 강점인 것이다. 재능이란 ‘남들은 이렇게 안(못) 한다고?’ 싶은 생각이 드는 분야에 있으니까. 함께 살면 수시로 나를 발견한다. 마치 여행을 떠나면 지금 내 위치를 계속 확인할 수밖에 없듯이.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면 내 위치가 어딘지 좌표를 찍을 수 있게 된다. 내 위치를 알면 비로소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에도 커뮤니티가 도움이 된다. 논스 안에는 개발자부터 PM, 디자이너, 창업가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궁금한 게 있을 때는 그냥 옆 사람에게 가볍게 물어보면 자세한 답이 술술 나온다. 전문적인 정보나 업계 사람들만 알고 있는 이야기는 구글링이나 AI의 도움을 받아도 접근하기 어렵다. 그런데 논스에 있으면 각 분야에 특화된 ChatGPT들과 함께 사는 기분이다. 실제로 ChatGPT보다 업계 사람들과의 커피챗이 더 유용할 때가 많다.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이 주변에 여럿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뛰어난 사람들과 어울리면 성과를 내기에도 좋다. 이전까지 한 번도 참여해 본 적 없던 해커톤에 세 번 도전해서 두 번의 바운티를 수상했을 정도니까. 논스 멤버들이 없었다면 도전할 마음을 먹는 것부터 믿을 만한 팀을 꾸리는 것, 실제로 성과를 내는 것 모두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작은 프로젝트든 사업이든, 좋은 팀원들과 한다면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뜻대로 되는 일 없이 백수가 된 이후로 이렇게까지 성장하기까지 가장 크게 바뀐 건 정신 건강이다. 혼자 살 때는 감정 기복이 클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는 우울이나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면 내 상태가 바닥을 찍고 끝없이 내려가는데, 기분 좋은 감정이 들 때는 적당히 좋은 상태가 금방 끝나는 식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같이 살면 우울하다가도 ‘밥 먹자’ 한 마디에 함께 식사하며 웃고 떠들게 된다. 우울이 너무 깊어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면 기쁨의 상한은 끝이 없다. 함께 모여 떠들다 보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저 같이 사는 것만으로 감정 기복 그래프가 정반대로 뒤집히는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돌이켜 봤을 때 인생의 분기점이라고 느낄 만한 시기들이 있을 텐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분기점은 논스가 될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 커뮤니티 밖에서는 어려운 것들이 안에서는 쉽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준 곳이니까. 단순히 논스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뛰어난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은 채로, 전에 없던 성과를 내고 있다. 인생의 내리막길이라고 느꼈을 때 들어온 곳에서 나는 가장 많이 성장했다.
어떤 분야든 도전하려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논스는 그 에너지로 가장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커뮤니티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1인 비즈니스로 매출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듯이, 눈부신 성장은 결코 혼자서 이뤄낼 수 없다. 인생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도전할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늘 살던 대로만 살다 보면 그 시기는 금방 지나가 버린다. 당신의 잠재력을 끝까지 썼을 때 무엇이 바뀔지 보고 싶다면, 지원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장훈 드림
* 이 글은 논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