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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Jul 19. 2021

018. 삶의 가치 VS. 결혼이라는 제도_ 또 이별

결혼을 고민하는 너에게_결혼 전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

이별을 앞두었을 때 우리는 느낌으로 그것을 알 수 있다

난 이별을 직감했다.

글쎄… B의 입에서 먼저 나온 이별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내 머리 속에서 B의 말보다 더 앞선 시간부터 떠다녔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별은 생각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우리는 적정 속도를 지켜가며 이별을 향해가고 있었다.


시작은 그의 동호회 활동이었다.

동호회 활동으로 일정이 점점 바빠지는 그를 나는 일주일에 한번 제대로 보기도 어려웠다.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할 수 없었고, 과연 이것이 연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그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그는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사실 한 달 내내 못 본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자신이 반드시 해야하는 일을 한다면,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위해 응원하는 것이 맞다.


다만, 그에게 내가 아쉬웠던 것은 일 이외의 시간에서 내가 배려의 대상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에게 바랐던 것은 동호회를 가더라도

‘나 오늘 시간이 남아서 동호회 연습을 가고 싶은데, 괜찮지?’ 라는 질문 하나였다.

동호회를 가지 못하게 할 내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데,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반드시 하는 사람이므로,

그리고 여태까지 그의 일과 취미를 모두 존중해왔다.


다만, 빈 시간은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빈 시간을 쓰는 방법과 사람 중에 내가 있었으면 했던 것이었다.

내가 1순위가 아니어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켜줬으면 했던 것이었다.


이런 시간들이 오래 지속되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음에도

변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더 이상 이 인연이 지속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우선 연인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쓰는 것에서

나에 대한 마음이 식었음을 느꼈고,

화도 내고 울어도 보고 달래도 보면서 여러 번 이야기를 했음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더 이상 우리가 애정의 관계가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고민했고, 이런 상태라면, 이별이 다음 단계가 아니겠느냐고 그에게 질문을 했다.

그는 시간을 달라고 했고, 일주일 뒤에 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이별의 이유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자신은 평범하게 보여도 ‘남들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고 싶다고…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개념은 너무 확고하고 이야기할수록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느껴서

나와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나는 애정이 식었다고 생각해서 이별을 이야기했던 것인데

그는 거기서 결혼과 가족에 대한 우리의 시각차이를 이유로 들었다.


사실 이별을 한지 시간이 꽤 흘러서 그 일주일 사이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애정이 식은 이유에 대해서 둘이 조금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이별의 이유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평범하지 않아서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10년을 알았다는 이유로, 1년을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쉽게 이별하지 못했다.

이별을 통보 받고, 다시 재회를 부탁 받고 우리는 일주일의 시간을 더 가졌다.

물론 결론은 이별이었지만, 그 일주일 동안 나는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질문을 했다.


내가 정말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가?

나는 B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동시에 나는 그 평범하다고 치부되지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받아들 일 수 있는가?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나는 단지 ‘평범하다’는 이유로 ‘당연하다’고 수용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언젠가 B가 나에게 결혼과 결혼 후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다들 그렇게 살아. 다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
그게 당연한 거야. 다들 너처럼 질문하고, 다들 너처럼 걱정하지도 않고!
내 주변은 다 그렇게 살아.
네가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가 본데.
다들 그렇게 살아.

물론 그때 나는 분노했다.

내 주변에는 결혼하고, 결혼 후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현명하게 해결해가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다양한 문제들이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늘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문제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하면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만,

발생 가능한 문제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해보고,

그 해결책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굳이 문제가 발생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일반적인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법으로 살아갈 필요도 없지 않는가.

일반적이지 않아도 자기만의 해결책이 있다면, 그것이 더 현명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거기에 ‘평범’이라는 가치를 부여하면서 나를 압박해왔다.


우선 나는 비혼주의 커뮤니티를 검색했다.

내가 상상하는 비혼주의 생활과 실제 비혼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비혼주의의 개념과

일상이 다른가가 궁금했다.

비혼주의와 관련한 토론회나 커뮤니티 모임에 나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생에게 ‘내가 정말 평범하지 않아? 아니 일반적이지 않아?’ 를 질문했다.

내 동생은 아주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내가 일반적이지 않음을 설득했다.

 

“언니가 일반적이지는 않지. 일반적이라는 것은 신뢰구간 95% 범위 내에서 평균에 가깝거나

통계적으로 51% 이상을 차지하는 집단 안에 있어야 하는 건데,

언니는 사실 공부나 직업, 결혼에 대한 사고 방식,

그 외의 다른 삶의 방식이 그 범위 내에 있지는 않잖아.

언니는 내 생각에 6시그마 밖에 있어. 그러니까 평범하지 않지!”


“평범하다는 건 가치 판단적 기준이 포함되어 있으니 일반적이지 않다는 단어를 써주면 좋겠어.

일반적인 것과 평범하다는 것은 엄연히 그 의미가 달라.”


“이것 봐. 평범하다는 단어 사용 자체에 기분 상해하는 것 자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거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런 단어 사용에 예민하지 않아.

언니가 평범하다고 이야기하려면 언니 같은 사람이 51% 이상이 되는 나라에 가서 그런 이야기 해.

언니의 가치관과 삶 전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언니의 특정 부분이 특이하다는 거지. 언니가 예술을 하고 싶어하잖아?

언니, 나는 진짜 예술가는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예술가가 자신의 좌표를 정확히 모르고 예술을 하면, 그건 예술을 빙자한 허세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예술가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평범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할지를 더 정확히 정할 수 있지 않을까?

언니가 예술을 한다고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면

나는 언니가 언니 자신을 좀 더 정확히 알았으면 좋겠어.”


동생과의 대화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내 동생마저도 나를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구나.

그렇다면 한 명의 인간으로써, 그리고 예술가로써 나의 좌표를 인식하는 작업은 중요하겠구나.

그리고 그 좌표를 잘 알아야 내가 앞으로 나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잘 선택할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 남자와 계속 만날 수 있을까

예술가로써 나는 아주 아주 일반적인 것에도 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이다.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들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각기 다르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평범하다고, 일반적이라고 쉽게 지나치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보고 싶었다.


그런 주제로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다면,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네가 하는 고민은 의미가 없어,

그러니 너도 고민하지 말고 제발 평범하게 살면 좋겠다고 말하는 남자와 내가 삶을 함께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해서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다시 하면 그것으로도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을 테니

결혼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접지는 말자.

하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남자와 함께 살면서

내가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다음날은 공연이 있던 날이었고, 공연은 아주 당연한 것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동시에 일반인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었기에 나는 나의 감정과 에너지를 잘 다스려야 했다.

 B와의 이러한 불안정한 관계에서 나는 안정감을 찾기 어려웠다.

새벽 느지막히 잠에 들면서 내일은 B와 결론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연 당일날 점심 B는 나의 집에 놓고 간 물건들을 찾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콩나물 국밥을 점심으로 택했다.

나는 B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결혼이 나의 예술활동이나 나의 삶에 장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해.

그러나 거기서 발생하는 것들로 또 다른 예술의 주제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어제 발견했어.

이건 ‘결혼을 하겠어.’ 라는 결심과는 달라.

가능성을 발견했으니 앞으로 결혼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정도야.

너랑 헤어지면 이제 다음 사람과는 결혼에 대해서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지.

하지만 우선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 사람이 너니까 난 너와 이 고민을 더 해보고 싶어.

자, 이제 네가 결정해.

나랑 결혼하고 싶었는데 내가 결혼을 하기 싫어해서 속상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결혼을 하고 싶었던 건데 하필 결혼하기 싫어하는 나를 만나게 된 것인지.

전자라면 내 생각에 변화가 있으니 우리는 계속 가보는 거고, 후자라면 헤어지자.”


아픈 건 어차피 아픈 거야. 앓고 일어나면 돼

이에 대한 그에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생각해보고, 공연이 끝난 뒤에 이야기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했다.


“나는 남들에 비해 일을 할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하는 사람이야.

내 마음과 에너지가 흔들리는 순간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 영향을 미쳐.

그러니까 나는 멘탈이 흔들리고 싶지 않아.

그리고 우리가 시간을 가지고 몇 달을 더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부정적이라면

나는 그 시간 동안 내가 쓴 에너지가 너무 아까울 것 같아.

그리고 네가 결혼을 하고 싶은 것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너도 지금 헤어지고,

몇 달 노력할 시간에 정신 챙겨서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아픈 건 어차피 아픈 거야.

폭풍우가 쏟아지면 그 폭풍우 맞고 감기 걸려 몇일 알아 누우면 돼.

감기로 죽지는 않아. 앓고 일어나면 돼.

그러니까 지금 결정해.”


그 결과 그는 다시 이별을 통보했다.

나는 2주 사이에 두 번의 이별을 통보 받았다.

물론 아팠다. 안 아프면 사랑하지 않은 것이지.


다시 내가 부품처럼 교체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결혼에 적합하지 않은 여자는 결혼이 필요한 남자에게 부품처럼 교체될 수 있는 존재였다.

그의 옆자리는 결혼을 하고 싶은 여자에게 적합했고, 그 자리에 적합한 여자로 나는 아니었다.

평범하지 않아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져들 것이고, 더 이상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없다. 당연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으로부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예민한 사람이 우리의 입장에서 귀찮을 지는 모르지만,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예민한 사람을 조금은 배려심을 가지고 기다려줄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은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부족하지만,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심리적 여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을 배려해 줄 수는 있다.


이 이별의 과정에서 나는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회피보다는 그 근본 원인에 대해서 더 많이 파헤치고,

공부하고자 하면서 부딪혀보려는 성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너를 피해 가겠어.’보다는 결혼에 대해서

‘긍정적인 너에 대해서 부정적인 나에 대해서 더 공부해 볼래.’의 태도였으니 말이다.


뭐 어쨌거나 나는 다시 부품처럼 교체되었다.

그와의 관계가 종료된 것에 있어서 슬펐다.

그러나 결혼을 선택하지 않아서 잃게 된 그의 아내 자리에 대해서는 전혀 슬프지 않았다.

나의 삶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나의 삶의 가치에 따라 감정적 소모가 있더라도 단호하게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Q of OUTRO

여전히 궁금하다.

당연한 것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싶은 나는

과연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나의 이러한 삶의 가치와 결혼이라는 제도가 양립은 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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