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ce Park Jan 31. 2019

'잘 지내?'

우정을 연애처럼 생각했던 죄



'잘 지내?'


전 남자 친구가 할 법한 이 문장은, 질문을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책임감을 갖게 한다. 


'잘 못지내면 뭐 어떡할 건데' 

심보가 뒤틀린 생각이 퍼져 나가는 것이 나에겐 꽤나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우습게도 '잘 지내?'라고 쪽지를 보낸 주인공은 전 남자 친구가 아니다. 

한 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여자 친구들이었다. 


나는 지금껏 친구를 사귀면서 절교 아닌 절교를 해야 할 때가 있었다.


이유가 어쨌든

나는 인간관계도, 그러니까 친구와 관계도 '연애'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껏 절교 아닌 절교를 겪으면서 말이다. 


'잘 지내?'라고 쪽지를 보낸 첫 번째 여자는 

취업하는 목적이 같았으므로 빠르게 친해졌다. 

예뻤고, 아름다웠고, 매력적이었던 그 여자는 

아쉽게도 '본인 이야기'가 주가 되지 않으면 관심이 없었다. 


나와의 관계를 분명히 유지하고 싶으면서도 

그녀는 내 이야기보다는 '본인의 이야기'가 더 중요한 듯했다. 

그래서 나는 매번 만날 때마다 에너지를 뺏겼고,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나 휴식이 필요할 때에도 어김없이 감정의 해우소 역할을 해야 했다. 


결국 나는 지쳐 떠났다. 


'잘 지내?'라고 시작된 쪽지 내용에는 

우리의 사이가 좋았을 때 이야기, 내가 해우소 역할을 참지 못해 신랄하게 욕을 했을 때의 충격과 공포,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자신이 미숙했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답장은 거진 1년이 지나서야 했다. 

우습게도 코 끝에 찬바람이 불자, 가끔씩 생각나는 것이다. 

예뻤고, 아름다웠고, 매력적이었던 그 여자가.


어렵사리 다시 만난 우리는, 아쉽게도 예전처럼 돌아가진 못했다. 

그녀는 여전했고,
나는 결혼을 통해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잘 지내?'라고 보낸 여자는 

대학교 같은 과 친구였다. 


1학년 때 같이 어울리기 시작하면 

보통 4학년 때까지는 함께 움직이게 된다. 전공수업을 같이 듣고, 졸업을 위해서는 소속된 무리가 있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자는 

나를 묘하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단 나만 보면 '무언가를 사달라'라고 했다. 

지나가다 길거리 음식이 보이면 '이거 사줘'

수업 공강 시간에는 '커피 사줘'

심지어 술을 함께 마실 때에도 '사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반전으로 그 여자는 같이 어울리는 '동기 언니'에게는 아주 돈을 잘 썼다.


왜 뭐라 하지 못했냐,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나는 그때 그렇게 '싹수가 없지 않았다'.




또 한 번은 그 여자와 술을 먹다가 

내가 한참 자주 가던 단골 바에 가게 되었다. 

신이 난 친구가 술을 엄청 많이 마시더니 바닥에 토를 했다. 

인사불성이 된 친구를 그 당시 하숙집에서 재웠고, 내 옷까지 빌려줬다. 


그러나 다음날 그 친구는 내 옷을 사물함에 구겨 넣은 채 돌려주었고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이 년이 나를 호구로 생각하는구나.


화룡점정은 그 친구를 믿고 나의 부모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그 당시 부모님이 다툼이 잦아 자연스레 이혼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그 상황 자체가 충격적이라 

그 여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물론 부모님의 불화는 한철이었고, 우리 가족은 행복하다)


그 후 우리 학교 축제 술자리에 참석하게 됐는데 

후배들과 어울려 신나게 떠들고 있을 때쯤

갑자기 뜬금없이 그 여자가 '우리 부모님은 너~~~무 사이가 좋아. 너~~~무 행복해'라고 입을 터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후배 하나가 물었다. '갑자기 부모님 이야기는 왜요?'


나는 얼굴이 벌게졌고, 수치스러웠다. 

그 여자가 취했든 안 취했든, 내 사정을 말한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내 아픔을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돌려 까기 하다니.



그래서 나는 그다음 날부터 그 여자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왜', 이 감정을 그 여자에게 말하지 않았는가 라고 또 누가 묻는다면 

설명할 도리가 없다. 


나는 그때 당시에도 그 여자가 나의 태도에 반응을 보이고 

대화를 시도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타인에게 '요새 쟤 왜 저래? 왜 나 모른 척 해?'라고 물을 뿐

나에게 직접 대화를 시도한 적이 없었다. 



두 번째 여자의 쪽지는 

내가 결혼식을 올렸던 2016년에 와 있었다.



'네가 행복한 모습을 보니 기쁘다. 앞으로도 행복하길 기도할게'


.....정말 개 같지 않은가.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

또 세상엔 일방적인 호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인연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잘 표현하며 살고 있다. 


두 명의 여자처럼은 인식되고 싶지 않아서.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후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