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에 가까운 옛날 일이 되어가지만 처음으로 집들이를 기획하던 그 벅차면서 벽찬(?) 순간을 기억한다. 중간 크기의 교자상 두 개를 온전히 이어 붙이고도 접시를 더 이상 올릴 공간이 없던 그 기억은 참으로 뿌듯하면서도 동시에 준비하느라 무척이나 고생스러웠다. 그나마도 연어샐러드와 싱싱한 회 그리고 노란 밥에 곁들인 정통(?) 카레나 통닭 같은 요리는 코스트코의 적극적인 협찬 덕에 접시 갈이 된 뒤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새롭게 메인 요리로 재탄생되었으니 약간(?)의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이라면 코스트코 음식은 푸짐하고 기름지다. 먹을수록 속은 덥수룩하지만 그 맛은 일품이니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도 결국은 계속 욱여넣게 된다. 무아지경의 식사로부터 고통받는 그들의 배에 잠시의 휴식을 선사하려는 목적에서라면 곁들임 요리가 필요할 것이다. 우걱우걱 먹다가 그저 잠시라도 젓가락 내려놓고 소화시킬 여유를 주고자 했는데 사실 그런 순간이라면 꼬치요리만 한 게 없다.
대파를 숭덩 썰어 불맛 내고 삶아낸 아스파라거스와 조금 덜 익어도 먹을 수 있는(?) 베이컨을 떡에 말아 번갈아 끼워 마무리했는데 비로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환골탈태하여 상의 가장자리마저 빈틈없이 채웠으니 그야말로 잘 기획된 집들이 요리 한 상이 탄생한 셈이었다. 모두가 즐겁게 먹던 그 모습은 다시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지지만 고생의 기억 탓에 끝내 입꼬리는 한쪽만 올라간다(썩소까지는 아님).
내가 처음으로 꼬치요리를 접한 건 아마 20년도 더 오래된 푸드트럭의 원조격인 닭꼬치를 팔던 트럭에서였을 것이다. 동네 어느 편의점(바이 더 웨이?) 맞은편에 있던 그 트럭에서 파는 닭꼬치는 그야말로 일품요리처럼 불맛 가득했고 닭고기(평화시장 비둘기는 아니었기를)에서는 육즙이 터져 나왔으니 어려서부터 그 위대한 맛을 알게 된 것이다. 닭꼬치를 굽는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불에 굽는 이 요리에는 대단한 정성과 노력 그리고 감이 필요한데 불맛은 필요하되 탄맛이 있어선 안되고 그을림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재로 만들면 안 될 노릇이다. 그러려면 결국엔 '약불'과 '강불'사이의 신들린 조절이 필요하다는 말로서 쉬운 요리가 아니다.
물론 그 당시라면 식품위생법이나 자동차 관리법에 의해 통제가 잘 안된 채로 스스로(?) 영업을 하던 탓에 동네 구석구석까지 좋은 자리를 선착순으로 파고들며 닭꼬치를 전파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시대라면 어려운 얘기가 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진짜 동네나 골목에서는 닭꼬치의 맛을 느끼기가 어렵게 되었다. 어디선가 근처에서 팔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 나서거나 대략 2만 원어치 닭꼬치를 배달시키는 것도 내게는 이상하고 어느 식당에 들어가 앉아서 먹는 그 모습도 마찬가지로 맛은 비슷할지언정 먹는 모양새는 나의 기억에 들어있는 그것과는 상반되니 지양하게 된다.
종종 우리의 머릿속에는 장소와 그 장소를 대표하는 먹거리가 주로 연결되어 기억되곤 하는데, 돈가스의 본고장이 어딘지 누가 원조인지는 몰라도 남산이 떠오르고, 왕족발 하면 장충동이 떠오른다. 산 어귀라면 막 거리에 파전이 떠오르는데 어떤 이들에겐 바로 이 장소가 오늘 오르려던 산의 정상 아니었던가. 한강에 가면 괜히 라면에 캔맥주를 먹어야 할 것 같고 후라이드 치킨이라면 가본 적 없는 그곳 켄터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서로의 기억과 추억이라면 다르겠지만 먹거리와 장소를 하나로 연결 짓는 우리 생각의 방식은 서로 비슷하다.
이렇듯 동네의 편의점 앞 전봇대 옆 그 장소가 어려서는 닭꼬치를 팔던 장소였지만 이제는 사라진 지 한참 되어버렸다. 베이컨 꼬치는 여전히 집들이나 초대 음식으로서 아주 가끔이라도 집에서 가정식으로 접하고 양꼬치는 여전히 중국인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서 특유의 향신료 내뿜으며 종종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유독 닭꼬치만은 내 머릿속에서 마땅한 장소를 잡지 못해 왔다. 출퇴근하는 거리에도 없고 집 근처부터 병원과 약국 근처뿐만 아니라 자주 다니던 번화가 또는 백화점의 식품관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었기에 여전히 공란으로 두어왔다.
최근 업무차(여행 아님, 5인 아님) 지방을 다녀오던 길에 갑자기 방광이 위급 신호를 타전하여 급하게 근처 휴게소에 접어들어 마음의 평화(?)를 먼저 챙기고 나니 위장(?)의 여유가 생겨 구경을 나섰다. 유명한 셰프께서 말씀하시길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저 눈으로 맛만 볼 요량으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다.
그러던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닭꼬치였다. 대파가 사이사이 들어앉은 불맛 가득한 원조의 모양은 아니었지만 겉보기에 한눈에도 잘 튀겨진 '후라이드 닭꼬치'였으니 왠지 모를 좋은 기운이 셈 솟았다. 먼저 온전한 그 맛의 향연을 느끼고자 소스 없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그야말로 잃어버린 그 공간과 음식의 추억이 단번에 자리 잡는 느낌이었다. 사실 튀긴 음식을 썩 좋아하지 않는 탓에 이 음식을 먹어볼 기회는 종종 있었지만 간절하게 음미하진 않았었고, 심지어 휴게소라면 더욱이 '호두과자'와 연결된 장소였을 뿐 그 외의 주전부리를 선뜻 집어 들지 않았다. 물론 그날의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휴게소는 '닭꼬치를 먹는 장소'로 기억을 쌓아가는 중에 있다. 조금 안타까운 일이라면 모든 신(new)과 구(old)가 서로 바통을 터치하는 그 과정에서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듯이 방 빼는 호두과자의 뒷모습이 한없이 쓸쓸해 보인다. 수십 년 동안 휴게소 간식의 대명사로 활약하며 영욕의 세월을 보낸 그였기에 퇴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진 말자. 그들은 닭꼬치와 반대로 골목상권을 성공적으로 파고들어 휴게소가 아니어도 평상시에 맛볼 수 있으니 접근성이 예전에 비해 훨씬 좋아지지 않았던가. 심지어 호두과자는 이미 프랜차이즈화가 완료되었고 정해진 레시피 덕에 그 맛이 일관되니 이제는 휴게소 호두과자보다 집 앞 호두과자가 오히려 '원조'처럼 느껴진다.
세상일 참 재밌다. 어려서 학원 끝나고 동네에서 사 먹던 닭꼬치를 이제는 놀러 가는 길 위의 휴게소에서 먹고, 놀러 가는 길에서만 먹을 수 있던 호두과자는 동네에서 먹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눌러앉아있던 휴게소의 간식거리 '왕좌'를 이제는 내려오지만 어쩌면 골목상권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으니 그가 진정 승자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더욱이 코로나가 조금만 더 진정되면 이미 결혼은 했으되 결혼식을 아직 올리지 못한 많은 젊은이들이 답례떡 대신 돌릴 테니 머지않아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코로나 극복의 염원을 담아 한마음 한뜻으로 '호두과자'를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