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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Jun 04. 2022

눈을 뜨고 바라보고 싶어졌다.

결혼을 앞두고 카메라를 샀다. 보조플래쉬를 달고 ISO, 셔터스피드, 아웃포커싱, 화이트밸런스 등 생소한 용어를 공부했다. 신혼시절에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짊어지고 여행을 다니면서 아내를 찍고 나도 함께 찍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이들을 찍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은 매순간 새로웠고, 이대로 흘러가면 그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찍은 사진을 다시 꺼내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휴대폰을 바꿀 때마다 차곡 차곡 쌓여진 수천장의 사진들, 혹시 몰라 어딘가에 저장해놓고는 잊어버린다. 이제는 정리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사진 속에서 내가 점차 사라졌다. 어딜 놀러가면 아이들과 아내만 배경 앞에 세워놓고 인증사진을 찍어준다. 나도 함께 하자고 손짓하지만 썩 내키지 않는다. 그냥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더 좋았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진이 자꾸 떠올랐다. 모호했던 생각과 의미를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 마치 머릿 속 흐릿한 무언가를 자세히 보고있다가 선명해지는 순간을 포착해서 찍는 것 같았다.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재빨리 글로 잡아두지 않으면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사진도 불현듯 찾아온 인상깊은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해 내는 것이 아닐까? 단지 표현 방법과 느껴지는 방식이 다를 뿐 '의미'를 담아놓는 것은 같은게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사진은 '내 마음'과 그 '마음의 거울'에 비춰진 '대상'을 찍는 것이었다. 불완전한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지 않고 인간에게 가장 민감한 시각으로 뚫고 들어가는 것이 사진이다.


호기심이 생겼다. 내 감각이 느낀 의미를 어떻게 사진 속에 담아내는지 궁금해졌다. 사진의 언어로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배우고 싶어졌다.


단지 '인증'을 위한 것이 아닌, '예쁘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날 것의' 내 마음을 발견하고 '느껴진 의미'를 사진으로 담아내고 싶어졌다.

그동안 글을 쓰기 위해 눈을 감곤 했다. 주변을 응시하지 않고 멍하니 먼산을 바라보았다. 생각에 잠기면 눈 앞에 뭐가 지나가는지 알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나를 현혹시킨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에는 눈을 뜨고 주변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일상적인 모습을 깨는 미세한 순간들이 보였다. 핸드폰을 꺼내서 그 순간을 찍었다.

옆에 나와 함께 걷고 있는 아내의 얼굴도 바라봤다. 연애시절부터 20년 넘게 보아왔지만 이렇게 가만히 바라본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내 모습을 화면 가득히 찍어보았다.


이제는 '시간을 갖고 관심을 기울여 바라본다'라는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렇게 바라본 것을 사진에 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것 같다.

다시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쳐메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사진 찍어주는 것을 귀찮아한다고 불평하던 아내다시 찍어주고 싶어졌다. 의미를 더욱 온전히 느끼기 위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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