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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작가 May 11. 2024

고등학교 1학년, 자퇴를 결심한 딸에게

아빠가 편지를 마지막으로 언제 썼는지 생각해 보니, 군대에서 부모님께 쓴 편지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 

군대에서 아빠는 어렸을 때의 모든 가치관과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했고, 그 과정에 할아버지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어. 할아버지는 아빠의 중요한 멘토 중에 하나였고, 아빠의 고민 상담자였어. 


뒤돌아보면 할아버지와 그전에는 왜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을까? 아빠가 아직 어려서였기도 했지만, 한 번도 아빠가 가는 길에 의문을 품지 않아서였던 것 같아. 주어진 길이 전부인 줄 알았고, 그 외 선택지는 주어진 길에서 낙오된 사람들만 찾는 것인 줄 알았어.


아빠가 군대 간 시기에 할아버지는 사업을 제법 크게 벌였는데, IMF가 오면서 큰 어려움이 생겼어. 결국 사업은 실패로 끝났고, 집에 집기들에 경매 딱지가 붙여지는 것을 봤어. 할아버지는 투자한 친적, 가족들의 원망을 한 몸에 견뎌내야 했어. 


그 어려운 시기에 할아버지는 군대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빠에게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아빠도 혼란 속에서 깨닫게 된 한줄기 빛과 같은 놀라운 생각의 씨앗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할아버지에게 쏟아냈어.


그렇게 주고받은 편지로 할아버지는 현실을 버틸 힘과 위로를 얻으셨고, 아빠는 제대 후에 앞으로 세상에 맞설 용기를 얻게 되었어. 


지금 딸의 꿈과 목표 그리고 열정선택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더 깊게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서로 마주칠 시간이 부족하고, 막상 대화를 하면서 딸이 던지는 질문에 정돈되지 않는 생각으로 답하려다 보니 온전히 의미가 전달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컸어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게 됐어. 과거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처음으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 딸.

남들이 정해 놓은 미래가 보장된 길이 아닌 불확실하고 험난하고 좁은 길을 선택하려는 딸. 


아빠가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해서, 더 쉬운 선택지를 주지 못해 아쉽지만, 그렇다고 자책하지 않으려고 해. 


딸이 스스로 선택한 어려운 선택지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더 감사하게 느낄 것이며, 그렇게 딸은 앞으로 세상에 맞설 가장 강한 무기를 얻게 될 것이니까.


우리가 감사한 것은 뭐가 됐든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 실패하더라도 회복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아빠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다짐했어. 딸에게 편지를 쓰고, 아빠 스스로 실천해 보이자고 말이야. 그렇게 딸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그 길을 혼자 외롭게 걸어가지 않도록 하자고, 그리고 아빠의 꿈을 위해 용기를 내어 나아가자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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