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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쿠키 Mar 01. 2019

1. 땅 고르기

욕심을 버리고 조금씩 조금씩. 

1년간 삽질하며 알게 된 명확한 사실이 있다면 딱 한 가지. 

"땅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1년간 삽질까지 해가면서 알다니. 느려도 심하게 느린 거 아닌가 싶지만 어쩌랴,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작년에는 알고 있더라도 마음이 급해서 듣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땅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좋은 열매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은 단지 헛된 바람일 뿐이라는 것을. 


필요한 농기구가 잔뜩 쌓여있다. 


밭에 가서 처음으로 할 일은 땅 고르기였다. 

먼저 농협 농자재판매장에 들러서 삽괭이와 레기를 구입했다. 당장 관리기를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장비들이었다. 그리고 땅 위에 뿌려주기 위해서 계분을 샀다. 


삽괭이와 레기, 농사초보라 농기계 이름도 생소하다.

특별할 거 없는 쇼핑이었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삽괭이와 레기를 사다니, 그리고 계분을 뿌려줘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다니. (어처구니없지만) 내심 뿌듯했다. 


좋은 뉴스 vs 나쁜 뉴스

"나무야, 안녕?"

오랜만에 밭에 갔더니, 지난해 심어놓은 나무가 자라 있었다. 아니, 물을 제대로 준 것도 아닌데 죽지 않고 살아있다니. 놀랍고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다음에 올 때는 나무가 좋아할 만한 작업도 해줘야겠다 싶었다. 


좋은 뉴스가 있으면 나쁜 뉴스도 있는 법. 겨우내 수도관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다 터져버렸다. 물을 틀었더니 수도 부근이 홍수가 난 것 같았다. 얼지 않게 막아주지 않은 불찰이었다. 내년에는 꼭 겨울 전에 잘 대비를 해야지.


영차영차, 삽괭이로 땅을 파고 뒤집고 있어요. 


찬찬히 땅에 인사를 건넨 후에, 본작업에 들어갔다. 

돌을 고르고 흙을 부수고. 사이사이 잡초를 뜯어냈다. 그리고 삽괭이로 땅을 파고 뒤집었다. 그 다음에는 땅을 넓게 펼쳤다. 고슬고슬한 밥처럼 흙이 부서졌다. 왜 이제 뒤집어주느냐고 귀여운 투정을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건강하고 정직한 시간이 흘렀다. 한 시간쯤. 비료포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집에서 내려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랜만에 미세먼지도 별로 없는 날이었다. 그래, 이 맛이야. 


냄새는 고약하지만, 땅이 좋아하는 계분.


땅도 맛있는 걸 먹어야지. 계분을 솔솔솔 뿌려줬다. 그리고 골고루 나눠 먹을 수 있도록 펼쳐줬다. 

자, 열흘 후면 더 튼튼해져 있겠지. 

그동안 열심히 살다 올테니 땅, 너도 힘내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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