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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CO Nov 26. 2023

김혜수가 김혜수 했다.

청룡 영화제의 여인, 김혜수


올해 청룡 영화제는 김혜수에게 바쳐졌다.

영화인들과 청룡 영화제 관계자는 물론 티브이로 행사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 그것이 온당하다 느꼈다.

수상소감에서 많은 이들이 김혜수를 향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했고 배우 염정아는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청룡영화제 1993-2023>이라 각인된 트로피를 전달한 정우성. 그림처럼 잘생겼지만 가끔 제멋대로 뚝딱거리는 이 남자가 혹시나 싶어 불안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제 역할을 잘 해냈다.

청룡의 여인, 김혜수의 마지막을 멋지게 에스코트했다. (휴우-)


30년.

이 시간을 어떻게든 실감해 보자.

지금의 내 나이에서 30을 빼본다. 철없던 꼬마 시절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이에 30을 더해본다. 확실한 노인의 나이다.


상당한 시간이다. 90을 수명이라고 따졌을 때 3분의 1에 해당하고 성인이 된 이후 왕성하게 사회 활동하는 시기의 대부분이다.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여러 시상식 중에서도 가장 유서 깊고 오래된 청룡 영화제는 영화인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즐거운 이벤트였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드레스와 턱시도를 갖춰 입은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

여배우들의 드레스 입은 자태는 작품보다 더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런저런 드레스들이 이슈가 되고 사라져 갔다면

김혜수의 드레스는 매년 사람들이 청룡 영화제를 기대하게 하는 고정 코너, 확실한 즐거움이었다.


화사의 전신 레깅스나 비비의 언더붑 패션이 있기 전에 김혜수의 백리스 드레스와 과감하게 가슴라인을 드러낸 드레스가 있었다.

이제는 모두 익숙하게 보아 넘기지만 처음에는 모두 당황했고 놀랐다.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칭송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종일관 생방송 카메라가 비추는 그녀의 모습은 눈 튀어나오게 섹시하고 아슬아슬하고 부러웠다.

김혜수는 누가 뭐래도 그 모든 드레스를 자신 있게 입었다. 그저 마르고 어려서 예쁜 여배우들과 달리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볼륨 있고 늘씬한 김혜수는 독보적이었다.


30년 동안 매년 온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드레스를 입고 생방송에 출연해 마르고 어린 여배우들과 함께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들에 조금도 꿇리지 않는 카리스마와 고혹적인 자태를 보여준 여자.

함께 진행을 맡은 남자 파트너들은 수 없이 바뀌었지만 김혜수는 그 자리를 지켰다. 그것은 단지 아름다워서만은 아니었다. 안정적인 목소리와 분명한 발음, 생방송의 변수들에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재치 있게 대처했던 지혜로움, 누구도 불쾌하지 않게 하는 적절한 유머 감각, 그 모든 탁월함에 더해 30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대중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던 조용한 사생활. 영화인으로서 부족함 없는 왕성한 작품 활동. 영화인들의 존경받아 마땅한 선배로써의 행보. 겸손함을 잃지 않은 후배로써의 미덕. 또한 영화 시상제라는 배후에 도사리고 있었을 수많은 이권과 압력에 휘둘리지 않은 처세. 30년을 한 자리에 있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들이다.


그 모습만으로 많은 여성들에게 롤모델이 된 배우.

아름다운 프로페셔널의 모습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는 여자.


그녀의 아름다운 퇴장에 나도 집에서 기립 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렸다.

내년에는 무대가 아닌 배우들이 앉아 있는 객석에 함께 앉아 오직 즐거운 마음으로 청룡 영화제를 바라볼 김혜수 배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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