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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이응 Jan 13. 2018

선풍기






모두가 잠든

푸른 여름 새벽

네가 열심히

날갯짓을 해도

계속 제자리지

아니라고아니라고

이쪽저쪽

천 번쯤 고개를 저어 되지만

계속 제자리지

난 이 밤

가만히 널 보며

안아주고 싶어져





한 여름 너무 더워 에어컨을 켜고 가족 모두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결혼 후 거의 6~7년을 불면증에 시달렸다. 새벽에 한두 번 눈을 뜨고 꿈은 꾸지 않는 날이 없었다. 내가 이리도 예민한지는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밑바닥에 눌려있던 우울감이 입 밖으로 퍼져 흘러나왔다. 이날도 어김없이 홀로 새벽 5시쯤 깨어났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쉴 새  없이 회전하며 팬을 돌리고 있는 선풍기를 멍하니 바라보다 울컥했다.

5년 정도  아들 둘을 키우며 생긴 흔하디 흔한 가정주부가 겪는 우울감이라 볼 수도 있다.

선풍기는 꼭 지금의 나 같았다.

선풍기처럼 쉼 없이 날갯짓을 해도 전깃줄에 매달린 신세가 까 무서웠다.

그 무서움의 원인이 아이가 아니라 남편이 아니라 결혼이 아니라 오로지 나일까 두려웠다.

플랜 B도 플랜 C도 결국 실패해 더 이상 내게 남은 플돌파구가 없을까 봐 초조했다.

이 더운 여름 선풍기가 고장 나면 많이 불편할 것이다. 덜덜덜 거리는 선풍기라도 틀어놔야 한다.

지금은 그럴 때라고 그래야 한다고 선풍기는 힘을 낸다. 선풍기를 만져보니 뜨겁다.

정지 버튼을 눌렀다.

소파에 누워 가만히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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