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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의 시대, 자본주의 생존법 ‘프리페셔널’

당신의 직장은 가장 빨리 당신을 버린다는 것을.

이번 달에만 주변에서 ‘정리한다’는 소식을 몇 번이나 들었다. 직원 10명이던 회사가 절반으로 줄고, 천호동 로데오 한복판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점포가 폐업 안내문을 붙였다. 거래처 사장이 점심 자리에서 “올해는 진짜 버티는 게 목표”라고 말하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얼마 전 암사에 있는 단골 뒷고기집에 갔다. 늘 고기를 구워주던 이모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날은 다른 사람이 서빙을 하고 있었고,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이모님은 그만두셨어요”라는 말이 낯설게 들렸다. 요즘엔 길을 걸을 때마다 사라진 자리를 세게 된다. 주차장을 지키던 어르신, 서점 계산대의 직원, 골목의 작은 문구점까지. 작은 정을 주고 나누며 함께했던 이들이 어느순간 보이지 않게 됐다. 돌이켜보니 변한 건 내 시선이 아니라 세상의 흐름이었다. 위기는 멀리서 오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옆자리와 매일 지나치던 골목에서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냉엄하게 깨닫는다.


나는 만 원으로 시작해 국내 1호 개인브랜드매니저가 되었다. 크몽에서 회당 165만 원짜리 고액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고 특별히 홍보활동을 하지 않아도(나는 그 흔한 SNS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의 임원, 전국구 외식프랜차이즈 기업인, 수십만 인플루언서부터 병원장, 스테디셀러 작가 등이 알아서 찾아오는 실정이다. 전국 단위 사회단체를 설립해 각계각층의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고, 방송에 출연해(JTBC 오! 아시스 고정 패널) 브랜드와 생존 전략을 이야기했고, 책을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퍼스트브랜딩)가 되었으며, 한 대선후보에게 초대되어 일선에서 정치 컨설팅과 전략 설계까지 수행했다.


실전 현장에서도 수많은 실험과 증명을 거쳤다. 노량진의 월세 100만 원짜리 작은 매장을 쉐어받아, 카드매출 200만 원 수준의 실내포차 ‘포차19x’를 불과 석 달 만에 월 매출 1,200만 원 규모로 리브랜딩했고, 반년이 지났을때쯤 혜화동에 2호점을 오픈했다. 유튜브 붐이 일어나기 직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크리에이터 매니지먼트 ‘열크사’를 설립했다. 광고 한 번 하지 않고도 미국 ABC뉴스, 로이터통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MBC, TV조선 등에 한국 유튜브 열풍을 대표하는 교육 에이전시로 소개되었고, 실제로 고연령 한의사를 60만 유튜버로, 100명 구독자였던 초보 유튜버를 3개월 만에 2만 유튜버로, 콘텐츠 아이디어가 전혀 없던 일반인은 컨설팅을 받아 업로드 2회만에 쇼츠 조회수 30만을 기록하였고, 1만 명 미만 귀농 유튜버를 14만 유튜버로 성장시켰다. 참고로 이 과정에서 나는 광고비를 300만원도 쓰지 않았다. 나와 함께하는 동료들은 다 알고 있는 팩트기에 거짓말 할 수 없다.


물론,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나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과정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추상적인 위로나 원론적인 조언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남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였던 약 3년여 전 내 저서 '퍼스트브랜딩'의 저자강연회에서 어떤이가 내게 집안의 배경이나 고학력이 뒷받침 된 것 아니냐고 내게 반문한 적이 있었다. 그 질문을 받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부모님은 기초수급자시고, 나는 정규대학이 아닌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사학위를 받았다고 말이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독자도 자신의 상황에 맞춰 실행할 수 있다. 그 과정을 압축한 기술이 바로 ‘프리페셔널’이다.


그동안 수많은 교육, 코칭, 컨설팅 상품을 봐왔다. 내 컨설팅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과정을 거친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창업 컨설팅을 한다는 사람 중 상당수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사업을 직접 시작해본 적이 없었다. 퍼스널브랜딩을 가르친다는 이들 중에는 정작 본인조차 자신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대기업의 자본과 조직을 기반으로 마케팅을 해온 경험만 가지고, 현장에서 무일푼으로 버티며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훈계하듯 조언하는 경우도 있었다. 말은 전문가인데, 그 말이 현실에서 작동하는지 확인한 적이 없는 것이다.


내가 추측하기로, 그들의 프로그램에 실전 트레이닝이 빠져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본인들이 현장에서 부딪히며 얻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나는 말뿐인 컨설팅이나 코칭이 아닌, 상대방의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고 진짜 홀로서기와 자유를 쟁취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기술을 만들고 싶었다. 다만 그 기술은 단편적인 노하우나 몇 가지 팁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지난 시간들을 통째로 갈아넣어야 했다. 사업을 확장할 때 광고비에 의존하지 않고, 로우리스크 하이리턴 구조를 만들어온 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시장에서 유일하게 현장성과 실전성을 갖춘 생존 비법서를 완성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프리페셔널’이다.


프리페셔널은 특정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누구나 배워서 홀로서기의 중간 이상까지 갈 수 있도록 설계된 생존 기술이다. 직장이 사라져도, 업종이 흔들려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드는 기술. 한 단어로 사람을 사로잡는 브랜드를 만들고, 돈이 흐르는 콘텐츠를 설계하며, 계속 팔리는 상품을 기획하고, 처음 만난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인적기술을 다룬다.


여기에 더해 진짜 내 사람을 알아보고 쓰는 용인술, 따라오게 만드는 리더십, 팔리는 판을 만드는 영업기획, 결제로 이어지는 영업스킬, 광고 없이도 사람들이 몰리는 마케팅 기획,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내어 오히려 성장으로 전환시키는 위기관리, 그리고 보이지 않는 흐름을 읽는 통찰력까지. 이 11가지는 서로 따로 떨어진 기술이 아니라, ‘프리페셔널’이라는 하나의 생존 기술을 완성하는 부품이며, 어느 하나가 비어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이 기술을 실제 시장에서 설계하고 실행했으며, 그 결과를 수많은 사람과 조직에서 반복적으로 증명해왔다. 요약하자면 내가 원했던 것은 나오는 순간 사막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1인 기업이나 프리랜서들이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수학의 정석' 같은 표준화 된 지침서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그 방법의 일부를 브런치에 최초 공개하려 한다.


다음 편에서 프리페셔널의 첫 번째 문을 연다. 〈한 단어로 사람을 사로잡는 방법 – 브랜드〉, 사람들이 잊지 못하게 만드는 단어 하나를 어떻게 설계하고 팔리게 했는지부터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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