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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림 Nov 19. 2023

프리랜서 임금 협상하기

#2 <일단은 프리랜서입니다>

겸손하지만 성과는 뽐내되 자랑을 해서는 안된다

평생 겸손함을 미덕으로 교육받아왔다. 오만해서는 당연히 안 된다. 자신이 잘해서 거둔 성공도 아니라고,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타인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빛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마 많은 한국인이 이런 가치들을 주입받아 왔을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온 나에게 직장을 다닐 때 너무 어려운 것이 있었다. 바로 ‘자기 평가’였다. 자기 평가란 1년에 한 번 혹은 그 이상 자신의 성과와 회사 및 팀에 대한 기여도에 대해 적어내는 시간으로, 해당 자료는 연봉 협상이나 승진을 논의할 때에 바탕으로 사용된다. 쉽게 말하면 자신을 세일즈해야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너무 거만하지도 않게, 지나치게 겸손하지도 않게 적당한 중도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성과만 나열하면 너무 자랑을 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팀원과 함께 한 것만 적어내면 한 것이 없는 것 같고. 어떻게 적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혀 여러 선배의 조언을 들으며 겨우 적어냈다. 하지만 나중에 팀장님의 반응을 보니 조금 어필이 과했던 것 같았다. 그래도 다시 쓴다고 해도 더 잘 쓸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직을 할 때에도 난관이 있었다. 바로 연봉 협상이었다. 스타트업 같은 경우에는 면접의 마무리에 희망 연봉을 CEO가 직접 물어보고는 했다. 차마 더 높게 달라고는 말하지 못해서 현재 연봉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그것보다는 높으면 좋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하지만 이직을 고려하던 스타트업에서 마지막으로 제안받은 연봉은 그의 90%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결국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 HR에 정중한 연봉 조정을 요청해야 했다. 인사팀은 나와 같은 상황이 너무도 능숙한 전문가였기 때문에 ‘이미 동일 포지션을 하는 사람들보다 높게 주고 있다’며 난감한 기색을 비쳤다. 몇 번의 메일이 오간 끝에 결국은 이전 연봉 수준에 맞춰서 이직을 했다. 하지만 같이 일을 할 사람들과 돈 얘기를 한다는 것은 너무도 껄끄러운 일이었다.


정글에 어서 와

하지만 회사 밖으로 나와보니 이전에 경험한 것은 ‘순한 맛’이었다. 연봉테이블이나 공개된 단가 평균이 없는 업계에서 구직을 한다는 것은 연봉의 변동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내가 하는 학원 강사, 통역, 글쓰기 같은 일이 그랬다. 같은 일을 해도 최저시급을 받을 수도 있고 (실제로 최고 선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당 5만 원을 받을 수도 있었다.

 

프리랜서가 된다는 것은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처음에 학원에서 일하기로 결심을 하고 알바 사이트에서 이력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 이력서로 설정을 해놨다. 그러자 5분도 지나지 않아 문자가 왔다. 온라인으로 일을 하는 회사라며 면접 의사가 있으면 알려달라는 연락이었다. 찌라시를 뿌리는 것처럼 온 문자여서 무시했다. 그러자 조금 있다가는 다른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까의 그 업체였다. 제시한 시급이 높기는 했지만 왠지 찜찜한 기분에 생각한 조건과 맞지 않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몇몇 학원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해 계속 전화를 받았다. 또 그런 줄 알고 통화에 응했으나 상대는 일전의 그 회사였다. 한숨을 쉬며 받았더니 이번에는 “혹시 저희 쪽에서 설명 들으신 적 있으세요?”라고 상대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렇다고 대답하며 거절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인터넷에서 그 업체에 대해 찾아보았다. 수많은 광고 글 사이에 그 회사를 퇴사한 사람의 후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초기에는 많은 지원금으로 사람을 혹하게 만들지만, 이후 실제로 벌 수 있는 소득은 얼마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적극적인 세일즈와 영업 활동이 중요한 다단계와 같은 구조의 회사였다. 내가 조금 사회 경험이 없었다면 모르고 가담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함부로 이력서와 연락처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학원에 입사하려고 했을 때에도 쉽지 않은 경험을 했다. 학원에서는 면접 때 시범 강의(일명 ‘시강’)를 시킨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곳은 내가 경험이 없으니 괜찮다며 시강도 보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인성 면접이 끝난 후 그들은 원하는 시급을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금액을 말하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5천 원 적은 금액을 말하고자 했다. 그러자 원장은 ‘얼마를 주면 진짜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은지’ 물어봤고 나는 그제야 내가 원래 생각한 금액을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그건 준비시간도 포함인지 아니면 강의시간만 세는 것인지’ 물어봤다.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부분이었다. 어버버 거리고 있으니 그들은 준비 시간도 돈을 쳐서 주겠다고 했다. 그 대신 내가 제시한 시급이 아닌 월급의 형태로 돈을 주겠다고 했다. 시급은 너무 정이 없고 알바와 차이가 없기에 월급을 주는 편이 선생님들이 소속감도 느끼고 퇴직금 같은 것도 더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장은 나에게 ‘1분 동안 방을 비워줄 테니 생각해 보고 계약을 할지 말지 결정하라’고 말했다. 너무 당황했지만 평정을 찾으려고 하며 ‘다른 학원에서 먼저 제시를 받았는데 거기랑 조건에 관련된 얘기가 안 끝나서 그 이야기를 먼저 해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내일까지 말미를 주겠다며 나를 보내주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계산을 해보니 그들이 제시한 월급은 내가 제시한 시급의 70% 수준이었다. 마음이 급해 계약을 했다면 꼼짝없이 발이 묶일 뻔한 것이다.


그래도 이직과 학원 면접 한 번을 겪으니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말 한 마디로 일 년에 몇 백만 원에서 몇 십만 원을 더 벌 수도 있고 적게 벌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한 덕이었다. 마지막으로 면접을 본 학원은 신입 초봉을 언급하더니 나에게 희망 금액을 묻지도 않고 면접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담당자가 자리를 떠나기 전 그를 붙잡고 ‘사실 다른 학원시급을 5천 원 더 높게 제시했는데요...’라고 웅얼거렸다. 그게 내 기준 최고의 용기였다. 그러자 그는 그럼 시강을 보자고 했다. 준비 시간으로 10분이 주어졌다. 대학교 때 제대로 된 과외를 해본 적도 없었기에 뭔가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처음 보는 교재를 고작 10분 준비해서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준비를 마쳤다. 원장과 담당자가 앉아있는 앞에서 시강을 해나갔다. 내 손은 벌벌벌 떨렸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내 눈동자는 책상을 보다가 사람들의 미간을 보다가 하며 방황했다. 원장의 ‘이 정도면 됐어요’라는 말을 끝으로 그 처참한 시강은 끝났다. 다행히도 학원은 처음 3개월은 3천 원의 시급을 높여주고, 3개월 이후에 2천 원을 추가로 인상해서 나의 희망 시급을 맞춰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힘든 말 한마디를 한 덕분에 시급이 올라간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역 일을 시작할 때에는 조금 예외적으로 케이스가 달랐다. 해당 회사는 모든 면접 프로세스가 끝날 때까지 시급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계약서를 쓰게 신분증 사본과 통장 사본을 보내달라고 하면서도 급여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내가 ‘급여는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올라온 그대로인가요...?’하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들은 그것보다 몇 천 원 더 높은 시급을 제시하며 이 정도로 책정을 해주겠다고 했다. 통역의 경우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보다 더 쳐주겠다니. 양심적이고 좋은 회사를 만났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이런 경우가 너무도 드물 것을 알기에 행운으로 느껴졌다.


신뢰와 열정은 돈으로

김연경 선수의 명언으로 도는 짤이 있다. 런닝맨에 출연한 당시 유재석 씨와 연봉 협상을 하는 장면이다. 12만 원을 제시한 유재석 씨에게 30만 원을 요구하며 그는 “저 팀은 32만 원을 받았다는데 저는 12만 원을 주시면 제가 무슨 힘으로 열심히 하겠습니까. 12만 원을 주시면 13만 원만큼만 하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그냥 대충 이렇게 앉아있는 거예요. 저 완전 여기에 몰입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30만 원을 주시면 제가 완전 열정을 가져가겠습니다. 열정! 열정!”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어질어질해진 유재석 씨는 결국 김연경 선수를 최고 금액인 23만 원에 스카우트한다.

업무의 초반에는 적응을 하기 위해서 급여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돈 받는 만큼만 하자’가 태도가 된다. 책임감도 그만큼만 갖고, 노력도 그만큼만 하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일을 하려다 보면 결국 돈으로 합리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열심히 하기 위해서라도 동기부여가 되는 금액을 시급으로 요구해야만 한다.

아직도 나의 가치를 내가 챙기는 일은 어색하다. 하지만 내가 나의 가치를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먼저 챙겨주지 않는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옛말처럼 힘들 때는 생색도 내고, 아직 조금 부족하더라도 미래에 능숙해질 나를 위해 충분한 급여를 주장해야 한다. 그것이 정글에서 살아남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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