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풂의 미학과 실망 속에서 찾은 새로운 다짐
오늘 오전 11시 3분. 공장은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소수의 인원만 출근해 원래 배치되었던 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 배치되었다.
친한 동료와 나는 같은 그룹에 속했으나, 예기치 않게 다른 조의 반장이 손 빠른 사람이 필요하다며 우리 둘 중 한 명을 지목했고, 결국 내가 그곳으로 갔다.
친한 동료는 내켜하지 않는 눈치여서 내가 자원한 것이었지만, 사실 누가 가든 별반 다를 바 없으리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라벨링 작업은 손 근육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꼼짝 않고 서서 손만 움직이니 다리가 쑤시고 발바닥이 욱신거려 서 있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라벨을 붙이느라 고개를 숙인 채 오랜 시간을 보내자 어깨, 목, 등까지,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증이 없는 곳이 없었다.
간신히 찾아오는 15분간의 짧은 휴식 시간만이 나를 숨 쉬게 했다. 그 찰나의 휴식이 없었다면 도저히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원래 우리 조의 반장님이 현재 작업하던 조의 조장과 무언가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았다.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아는 체를 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얼어붙는 듯한 냉대에 멋쩍어진 나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 그 무심한 반응은 계속해서 나의 신경을 거슬렸다. 이곳 사람들은 아무리 잘해줘 봤자 그때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얼마전 우리 그룹 반장님 생일이어서 선물을 챙겨준 적이 있었다. 물론 생색을 내려던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상식과 도리를 다하고 싶었을 뿐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살뜰한 보살핌을 받았다면, 아마도 살갑게 대해주거나 적어도 반장님처럼 모르는 사람 취급하며 냉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서글픔보다는 서운함이 앞선다. 내가 준 만큼 돌려받으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적어도 그런 자리에서 아는 체 정도는 해줬다면 이토록 서운한 감정에 휩싸이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본래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오늘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무언가를 챙겨주는 행위를 적당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정확히 선을 긋고 그 안으로 더 이상 발을 들이지 않으리라. 내 것을 아낌없이 주는 일은 앞으로 절대 없을 것이다.
이 회사에서 알게 되어 친해진 언니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언니와 꽤 친하다고 느껴 잘 챙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끼는 값비싼 가방과 지갑을 선물했다. 하지만선물을 받은 이후로 언니로부터 잘 쓰고 있다는 어떠한 말도 들을 수 없었고, 오히려 이전보다 관계가 더 소원해졌다.
앞으로는 절대로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을 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