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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럭키걸 Oct 13. 2024

희망? 나를 속이라고?

희망 우기기 정신과의 첫 만남

유튜브에서 이상한 신부님 한 분을 발견했다.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기란다.


'자신을 속이라는 건가?'


'어라? 이 신부님 성함이 왠지 낯이 익다?'


마침 집에 있던 책 한 권이 생각났다.


'통하는 기도, 차동엽 글'



이 책은 내가 20대 초반에 영국에 잠시 살았을 때 한인 교회에서 물려받은 책이었다. 버리기엔 좀 그래서 한국으로 가져왔었다. 독립할 때도 이 책을 함께 가지고 나왔다. 읽지도 않을 거면서 '언젠가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에 다시 꺼내 보게 될 줄이야. 그렇게 차 신부님과의 인연은 유튜브 알고리즘과 책 한 권으로 시작됐다.


차 신부님은 뭔가 달랐다. 평소 성당에서 들어보지 못한 그의 파격적인(?) 언사는 나를 해방시켜 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세례만 받고 냉담하던 나 같은 날라리 신자도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신선한 충격을 준 차 신부님에게 호기심이 생겨, 이후 그의 다른 책 몇 권도 사서 읽었다.


'무지개 원리, 행복 선언, 믿음 희망 사랑, 희망의 귀환'


이 책들을 다 읽고 나서, 주옥같은 수많은 글귀 중 나에게 남은 정신은 오직 하나였다.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겨라!'


아마도 이 말이 내게 가장 필요해서 그랬으리라.


처음 '희망 우기기' 정신을 들었을 땐, 자신을 속이라는 말로 받아들여 비딱하게 바라봤다. 당시 나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것 이상으로 돌다리를 마구 두드려 부숴버릴 정도로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희망 우기기' 정신은 나를 속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출처: soej24_Pixabay

신부님의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나를 속인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 말마따나, 나폴레옹도 희망을 꿈꾸던 망상가였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우리 독립운동가들도 희망을 현실로 만든 사람들이다. 그렇게 속는 셈 치고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기는 삶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의 싹을 틔웠다.


출처: chacha8080_Pixabay



차 신부: "하나만 얘기할 수 있어요. 아 근데, 우리 젊은이들이 우울해요? 그렇게 많이?

우울에 치료약은 희망이에요. 사람들이 왜 우울하냐. 앞이 안 보이니까 우울할 거 아니에요.

근데 그게 무슨 희망이냐고 하면, 근거 없는 희망. 헛소리라도 하고 살으란 말이야.

'야, 내가! 뭐 두고 봐, 잘 될 거니까!'"


구어체로 늘어놓듯 말을 해 놔서 정돈은 덜 된 문장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읽어도 알갱이는 실하게 전달되었다. '근거 없는 희망', '헛소리', 이런 표현들은 내 희망철학의 핵심요소다.

여기서 진일보한 것이 바로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겨라!'라는 다소 우악스런 나의 권면이다.

_ 희망의 귀환, 차동엽  



사실 '우기다'라는 단어는 내게 억지를 부리던 직장 상사를 떠오르게 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단어인 '희망'과 결합한 '우기기 정신'은 묘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는 부정적 단어가 가진 거대한 힘을 역이용해 내가 좋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처음에 내가 콧방귀를 뀌던 이 '희망 우기기 정신'은 삶을 포기하려 했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고, 내 인생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되었다.


요즘 나는 '희망 우기기' 정신이 다시 필요한 시기를 맞았다. 처음엔 무시하던 이 정신이 어떻게 나를 다시 살려냈는지, 앞으로 또 어떻게 나를 살아가게 할지 궁금하다. 능력이 부족하여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자신은 없지만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이렇게 버티는 이도 있다고 생존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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