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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Apr 13. 2018

4. 3년 전 베를린에서 온 편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파도소리 같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둔한 감각을 가져서일까.

 가만히 눈을 감고 형체가 없는 바람 밑에 앉아있는다. 벌써 코끝에 바다향이 밀려오는 것 같다. 찌르르한 소금 냄새와 정체모를 바다 식물의 냄새를 기다렸다. 모든 게 허사였고 결국 눈을 떴다. 나는 커다란 나무 사이에 끼여있는 오래된 아파트에 있었다. 잠시 몸을 뒤채니 제법 익숙해진 향이 나를 안심시켰다. 오래된 나무와 촌스러운 디자인의 매트리스가 삐걱거린다. 이 곳은 바다가 아니라 잠시 머물던 도시의 한 구석이다. 눈을 깜빡였다. 오래 머문 흔적이 없이 기본만 갖춘 방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숨처럼 길게 숨을 내뱉으니 이제 정말로 익숙한, 전혀 새롭지 않은 공기가 폐부에 가득 찼다. 이름 모를 나무의 잎사귀와 이곳의 음식 따위가 섞인 향을 느끼자 이곳은 완벽한 타지임을 새삼 느꼈다. 이곳은 바다가 아니었다.

바다도 익숙하지 않다. 나무가 부대끼는 소리보다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더욱 낯설다. 그러나 그 찝찌름한 냄새가 나를 기억하게 했다. 어릴 때부터 켜켜이 쌓인 버려진 조개껍데기들 같은 기억. 


이 곳 베를린은 모든 게 다르다. 그래서 이렇게 찰나의 순간이라도 나의 터전을 닮았다면 이렇게 좋은 가봐. 그런 데다가 벌써 이곳에 익숙해져서 새로운 향을 남겼어. 이 기억은 어떤 선명한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되겠지. 그때는 이곳이 그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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