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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y 03. 2018

6. 여행의 흔적이 묻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친퀘테레에서의 하루를 영원히 꿈꾸다

  요즘 정신없이 자다가 눈을 뜨면 여기가 이탈리아의 어디인지, 오늘은 어떤 일정인지 비몽사몽 고민을 한다. 그리고 이내 내가 눈을 뜬 이 곳이 내 방 한 구석이라는 사실에 약간의 아쉬움과 안도를 담아 꿈자리를 정리한다. 예고했던 대로 나는 이탈리아로 훌쩍 떠났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짧고 긴 여행의 끝에 여독을 즐기고 있다. 긴 비행시간이 여운을 즐기기도 전에 현실감을 일깨워줬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미적지근하게 끝난 여행의 여파가 아직은 있는 걸까.



친퀘테레의 아름다운 해변. 이곳은 여름이 되면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로 꽉 찬다고 한다.

 여행을 자주 떠나는 편임에도 이렇게 꿈에서 깨서도 이곳이 어디인지 혼란스러운 것은 올해부터 처음 겪는 일들이라 얼떨떨하기만 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겪던 혼란이라고만 생각했다. 무서운 공포영화를 봐도 꿈에 귀신이 나를 쫓아온 적이 없었고, 그렇게 좋아하는 가수를 보고와도 꿈에 그가 나온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여행 역시 삶의 일부분이기에, 비교적 이성적으로 여행을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강렬하게 행복해도 지나간 일은 추억할 수밖에 없으니까. 


배르나짜로 향하는 트레킹 코스의 끝자락. 이 곳에서 친퀘테레의 한 마을 베르나짜가 시작된다.

 

 그러나 지금은 꿈속에서도 이른 여름을 겪으며 새까매진 피부를 더 태양에 가깝게 그을린다. 그리고 어느 때는 친퀘테레의 트레킹 코스를 밟고 정작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이탈리아의 꾸덕한 까르보나라를 먹는다. 정말 재미있게도 꿈에서 나는 이랬으면 좋았을걸-하는 후회를 단 하나도 고치지 못한 채로도 좋다고 웃는 것이다. 사진, 혹은 글귀 몇 자에 담긴 시간들은 현금 인출이 되지 않아 가족과 다퉜던 것과 발목이 아프도록 오르고 올랐던 험난한 트레킹 길은 모두 잊어버린 채 생생한 초록빛과 시원한 바람만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꿈에서 깨면 현실과 그렇게 헷갈리고야 마는 걸까. 너무나 아름다워서 이것은 꿈이라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흔적이 묻은 꿈과 현실은 방금 지나간 시간들의 불완전하고 불편한 기억까지 모두 아름답게 만들어버린다. 


아름다운 친퀘테레의 전경. 꿈에서라도 잊을 수 있을까?

 올해는 벌써 너무나 많은 여행지를 보고, 느끼고 왔다.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뉴욕을 가고 늘 염원하던 이탈리아로 향했다. 전혀 다른 여행의 시작점에서 끝은 늘 아쉬움과 그리움만을 남긴다. 그래서 아직은 일상으로 돌아가 여행을 꿈꾸기만 해야 하는 생활들이 두렵기까지 하지만, 다시 이 시간들 위에 쌓일 미래를 꿈꾸며 아름다운 추억을 정리한다. 그리고 내가 쌓아온 순간들을 다시 되새길 날 역시 기대한다. 언젠가는 꿈이 아닌 현실의 어느 날에 뜨거운 태양빛에 팔다리가 아주 새까 매질 때까지 친퀘테레의 해변을 걷고 또 걸어야지. 친퀘테레의 가을 포도가 그렇게 달다고 하던데, 꼭 작은 포도알을 먹고야 말 거야- 하는 다짐도. 그리고 새로운 꿈도 함께 적어낸다. 오늘 밤 꿈에는 그토록 염원하던 멕시코를 거니는 내가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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