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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이 Sep 24. 2023

민찬이와의 첫만남(1/2)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 따뜻한 눈웃음 한 줄기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마음 속 상자 같은 것이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그 상자를 자주 열어보고 흐뭇해하고 가슴 벅차하면서 따뜻한 사람이 되어간다.


선생님으로서 나는 이 상자에 쉽게 손을 뻗어 다양한 것들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다.

어제의 불평많았던 말썽꾸러기가 오늘 수업시간에 조금 과장된 몸짓으로 적극적으로 손을 들어 발표하는 것, 쉬는시간에 내 책상 위에 마이쮸 한 알을 올려두고 쭈뼛쭈뼛 물러가는 것은, 이 상자 속에 내가 채워넣은 따뜻하고 간질간질한 것들의 힘이다.


상자를 정돈하고 비워주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학년초 3월,

학년연구실에서는 동학년 교사들끼리 작년에 어떤 학생이 자주 문제를 일으켰는지, 지도상 유의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오고간다. 필요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이야기들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은 아이들의 상자 속에 어쩔 수 없이 채워졌던 차갑고 매서운 기억들을 모른척해주고 싶어서이다.

반장에 출마하는 말썽꾸러기에게 친구들의 야유가 쏟아질 때, 우유배달 당번에 지원한 늦잠꾸러기에게 "너 맨날 지각해서 우리 우유 못 먹게 하려고 그러지!"하는 비난이 터져나올 때, 나는 둔한듯 눈치없는 듯 아이의 상자를 열어 모든 아이들 앞에서 깨끗하게 탈탈 털어내 준다.


"뭐, 괜찮지 않을까요?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몰라요! 어려워하면 우리가 다 같이 도와주면 되니까 한 번 믿어봅시다."


말끔하게 비워진 상자를 건네받은 아이는, 조금은 상기되고 벅찬 얼굴을 하고 있다. 마음이 봄의 흙처럼 말랑말랑하고 촉촉해진 아이에게 심어줄 씨앗을 고르며, 나는 한껏 선해지고 따뜻해진다. 어느 직업이 이렇게 순수한 존재들과 깊이 교감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한다고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떠들어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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