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
올 여름 이 소설을 만났다. 2010~2017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 중에 일곱개의 작품을 뽑아 동네서점 에디션으로 출간된 책이었다. 올해 여름은 어느때보다 뜨거웠다. 뜨거운 여름 한낮에 카페에 앉아 첫장을 넘겼다.
그래서 필용은 종로로 나갔다. 종로에 나가려고 나간것이 아니라 걷다보니 종로까지 간 것이었다. 필용은 걸으며 울었다. 퀸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내 평생 사랑>을 들으며 울었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며 울었고 <구해줘>를 들으며 울었다. 세이브, 세이브, 세이브 미. 구해줘. 필용은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들며 하소연하고 싶을만큼 간절해졌다.
필용은 울었다. 울면서 무엇으로 대체되지도 좀 다르게 변형되지도 않고 무언가가 아주 사라져버릴 수 있음을 완전히 이해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하지만 그건 실제일까. 필용은 가로수 밑에 서서 코를 팽하고 풀었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뭔가 바뀌었을까. 바뀌면 얼마나 바뀔 수 있었을까.
처음부터 필용은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설이 끝날때 까지 필용은 운다. 대낮에 길을 걷다가 울고, 노래를 들으며 운다. '나 이렇게 슬프니까 나 좀 제발 위로해줘.' 라고 소리치듯이 운다. 필용의 눈물을 보다보니 이전에 지하철에서 보았던 한 여성의 눈물이 자꾸 떠올랐다.
3월 즈음,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탔다. 핸드폰을 만지작 하는데 옆에 앉은 여자분이 계속 흐느껴 울고 있었다. 슬픔을 억누르려 두손가득 얼굴에 묻어보지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나보다. 불규칙한 호흡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에게 아무런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그 슬픔에 귀기울이는 것 밖에.
쏟아져 내리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해 지나가는 길에 주저앉고 울어본 적이 언제였더라.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6년전 내게 찾아왔던 울음을 기억하고 싶어서 일까. 지금은 기억하려고 해도 까맣게 잊혀진 그때의 울음을. 그것 또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이기에.
필용은 오래 울고 난 사람의 아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질문들을 하기에 여기는 너무 한낮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정오가 넘은 지금은 환하고 환해서 감당할 수 조차 없이 환한 한낮이었다.
필용도, 지하철에서 만난 여성도, 6년 전에 나도, 우리 모두 한낮에 울었다. 감당할 수 조차 없이 환한 한낮에. 언제나 그렇듯 울음에 담긴 감정은 명확하지 않다. 환한 한낮이 매일 그 시간을 지키듯 우리의 울음도 이유없이 계속 반복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