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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Oct 04. 2018

무사히 할머니가 될수 있을까

영화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된다는 것

 

어려서부터 발달장애를 가진 혜정씨와 혜정의 언니 혜영씨가 시설 밖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영화로 담았다. 혜정씨는 초등학교 육학년때부터 서른살이 될 때까지 시설 안에서 자랐다. 그녀가 시설로 가게 된 것은 그녀 본인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시설로 가게된건 누구의 선택이었을까?

시설에서 발달장애인 혜정씨가 가장 많이 듣었던 말은 '어른이 되면'이라고 한다. 혜정씨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는 말로 혜정씨를 다독였다고 한다. 그럴때마다 서른살이 된 혜정씨는 묻는다.


"그럼 난 언제 어른이 될 수 있어?"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립'이란 단어가 떠오르는데 우리는 과연 완전한 자립을 이룰 수 있을까. 주변의 도움 없이 완전한 자립을 이룬다는 건 비장애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혼자서는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지 않을까. 우리 모두 평생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겪는다. 다만 어른이 되어가는 속도는 모두 다를뿐이다. 분명한 것은 혼자서는 어른이 될 수 없다.



서로를 서로에게 격리시키는 사회


우리 사회는 이미 수많은 경계를 짓고 서로를 서로에게 격리시키는데 익숙해져있다.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난 지금까지 비장애인 사회에서 격리되어 살아왔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우연히 장애인을 만나면 겁이 난다. 그들에게 겁이 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할지 무지하기에 겁이 난다. 신기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장애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장애인과 함께 하는 삶을 경험적으로 습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혜영씨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비장애인이 비장애인을 대하는것 처럼 일단 부딪쳐봐야한다고, 만약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면 사과하고 돌이키면 되는 거라고.


더 이상 서로를 서로에게 격리시키지 않으려면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와야 한다, 즉 '장애인의 탈시설화'라는 화두를 던져야 한다. '장애인의 탈시설화'를 이야기하면 현실적으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미 탈시설화를 이룬 나라들도 있다. 장애인의 탈시설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교실에서 함께 수업하고,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삶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경쟁사회에 익숙해진 우리의 현 교육환경이 장애인들과 더불어 사는 교육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현실적인 문제에 많이 부딪히겠지만 '장애인의 탈시설화'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누군가의 삶을 돌본다는 건, 다른 누군가가 삶을 포기하는 것


우리 사회는 이 명제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드리고 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난 대선때 문재인 정부 복지정책의 간판이었던 치매국가책임제도에 격하게 공감했던 우리들은 모두 다 알고 있다. 더 이상 돌봄의 문제를 가족에게만 전가하면 안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함께 돌봄의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엄마에게 24명의 친구가 있어서 하루에 한시간씩 혜정이를 돌봐줄수 있었다면 우리 엄마는 그 젊은 나이에 엄마이기를 포기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여전히 장애인 돌봄의 문제는 가족들이 책임을 지고 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시설로 보내야하는 가족들의 선택에 어떤 말도 더할 수 없다. 24명의 비장애인들이 하루에 한시간씩 지적장애인을 돌볼 수 있다면 24명의 비장애인들은 돌봄때문에 삶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며 장애인 역시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텐데. 한시간의 돌봄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모두 언젠가는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생각대로 사는 삶


영화에서 혜정씨의 이야기를 듣고, GV에서는 혜영씨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영화 속 연말 시상식장에서 혜영씨가 무대앞으로 나가 밴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 있었다. 혜영씨의 행동에 모두가 즐거워했다. 혜영씨를 보면서 나 스스로도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혜영씨의 눈이 좇는 세계가 궁금해졌다.

영화가 끝나고 정말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긴 여운이 남았다. 영화 후에 GV에서 관객들은 혜영씨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혜영씨는 관객들의 질문에 친절히 답을 했고, 그 이야기를 듣던 나는 순간순간 울컥했다.


혜영씨가 건네는 이야기 안에 혜영씨가 살아오면서 했던 생각의 무게가 오롯이 느껴졌다. 생각하고 고민한 것들을 자신의 언어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또 생각하고 정리하고 고민했을까. 생각의 늪에서 결국 혜영씨는 생각대로 살기를 선택한다. 동생 혜영씨를 시설 밖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초등학교 때 혜정씨를 시설로 보내면서 혜영씨는 자신의 일부가 어디론가 사라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더이상 동생을 돌보지 않아도 됐기에 시간적 여유는 찾아왔지만 진정한 자유는 얻지 못했다고. 항상 마음속 어느 한켠에 구멍이 뚫려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동생과 함께 살기로 결심한 지금이, 생각한대로 살고 있는 현재가 더 행복하다고 한다.



약하다는 것은 연약하다는 것이 아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혜영씨와 혜정씨가 연말 콘서트를 여는 모습이 담겼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참 뭉클했다.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는 장면도 영화 속에 간간히 보였다. 혜영씨가 혜정씨와 함께 사는게 이제 10개월 즘, 정말 그들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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