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이 Oct 04. 2018

안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

은유 <쓰기의 말들>

살다보니 때를 놓친 것, 사라져 버린 것, 엉망이 되어 버린 것, 말이 되지 못하는 것이 쌓여갔다. 자주 숨이 찼다. 참을 인자로 가슴이 가득 찰수록 입이 꾹 다물어졌다. 토사물 같은 말을 쏟아내긴 싫었던 것 같다. 글쓰기는 나만의 속도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안전한 수단이고, 욕하거나 탓하지 않고 한 사람을 이해하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뒹굴더라도 연꽃 같은 언어를 피워 올린다면 삶의 풍경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 미련이 내게 준 선물이다.


처음 마주했던 글쓰기는 여러장의 자기소개서였다. 망망대해 같던 하얀 바다에 첫문장을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를 드러내야 하는데 정작 나를 드러내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 쓴다면 그 모습 그대로 도태되버릴까봐 겁이 났다.

나를 포장하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글을 쓰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란 것을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난 한문장으로 정의할 만한 견고한 사람이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고한 가치관과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 포장했고, 그렇게 몇일을 쓰다보니 마치 내가 그런 사람이 된 듯 했다. 솔직하지 못한 글을 쓰는 내내 불안했다. 불안한 글쓰기는 읽는 사람도 불안하게 느껴졌을 터, 불안한 글을 읽은 이의 지적같은 질문에 나는 또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그 이후로 글을 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글을 쓰지 않아도 살만한 세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주 숨이차기 시작했다. 불의한 것을 보고도 겁이나서 모른 척 했고, 힘든 순간에는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괜찮다며 웃어넘겼고, 마지막 순간에는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렇게 가슴 속에 응어리가 가득 찰 수록 쓰는 것이 간절해졌다. 글쓰기는 나만의 속도로 하는 말하기이다. 찌질했던 그 순간을 회상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와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나만의 속도로 말하다보니 가슴 속에 찼던 응어리들이 조금씩 녹아내리더라.


슬픈 책을 읽고 슬픈 일을 꺼내 슬픈 글로 쓰면 슬픈채로 산다. 살아갈 수 있다. 왜 슬픈 책을 읽느냐는 항의는, 나는 슬프다는 인정이고, 슬픈 사람은 할 말이 많게 마련이며, 거기서부터 글쓰기는 시작된다.


언제부턴가 슬픔 음악을 즐겨듣고, 슬픈 책을 골라보고, 슬픔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문장을 모으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심각하게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내가 이렇게 슬픔에 집착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였다.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슬픔을 즐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였을까.

지금보다 조금(?) 어린시절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일에 매우 서툴렀다. 특히, 슬픔이란 감정을 마주하기보다 피하려고 했다. 슬픔을 마주하면 한 없이 나약해지는 내 자신이 싫었다. 그렇게 슬프고 힘든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넘기는 나를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너 지금 안 슬퍼? 슬퍼야 하잖아. 근데 왜 안울어. 충분히 슬퍼해도 되고, 맘껏 울어도 된다고.."
내가 쌓았던 모든 관계가 무너지는 날이었다. 난 또 멍청하게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고 있었는데 날 오랜시간 봐왔던 친한 언니의 한마디에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울기만 했다. 울기는 참 많이 울었는데 한번 그렇게 울고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때로는 슬퍼도 된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위로였다. 슬픔이 노폐물 처럼 쌓여갈때, 그냥 슬픈채로 살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쩌면 용기란 몰락할 수 있는 용기다. 어설픈 첫 줄을 쓰는 용기,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 진실을 직면하는 용기, 남에게 보여주는 용기,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 다시 시작하는 용기. 도돌이표처럼 용기 구간을 왕복하는 일이 글쓰기 같다. 오죽하면 이성복 시인이 말했을까.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시키는 거예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날 감탄시킨 문장을 보면 그 작가의 통찰력과 필력이 부러워진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문장도 쉽게 쓰여지는 법은 없을것이다. 유명한 작가들도 어설픈 첫 줄을 쓰는 용기가 있었을테지.

글은 한 사람의 모든 과거, 경험, 사유들을 담아내는 것이기에 굉장히 사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글이 계속 자기안에 머무르게 되면 빛을 보지 못한다. 이때 남에게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적인 영역의 글들이 밖으로 나와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공적인 기능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세상밖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읽히고 공감대를 형성하면, 누군가의 글의 재료가 되고 또 다른 글을 생산하고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오늘도 글을 쓰며 나의 무지를 인정하게 된다. 쓰고 싶으나 쓸 재료가 없다. 문장이 잘 정돈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지한 자가 가지는 용기의 힘이랄까. 다시 시작하는 용기는 도돌이표 처럼 다시 글을 쓰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 타인의 아픔을 얼만큼 공감할 수 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