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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하이 Sep 15. 2022

소설 '젊은 날의 초상' 속 화양연화

이문열의 꽃다운 시절과 왕가위의 화양연화






화양연화(花樣年華)! 미장센의 대가이자 스타일리스트 감독 홍콩 왕가위 영화로 만방에 알려졌다. 꽃 모양이 일 년 중 가장 화려한,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말한다. 서로 사랑의 말을 하지 못했지만, 사랑을 꿈꿔갔던 챠우(양조위)와 리첸(장만옥)의 기억이었다. 아이러니한 건 화양연화가 언제였는지 지나치는 도중에는 알아차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세월이 흐른 후 그 시절이 그랬음을 짐작할 뿐.


영화 '화양연화' 에서 라디오에서 화양연화가 흐른다.

이문열 작가 또한 가장 빛나는 문학의 시기에  『젊은 날의 초상』 3부작을 썼다. 모두가 읽었으며 누구나 갈망했던 서사였다. 첫 번째 작품 「하구(河口)」는 "삶의 꽃다운 시절"을 회상하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당시로서야 '화양연화'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왕가위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그리고 '꽃다운 시절'과 '화양연화'는 같은 뜻이지만, 둘 사이 시니피에(記意)의 차이가 적지 않다.


소설 속 「하구」는 낙동강 을숙도 인근 가상 도시 강진이다. 주인공 '나'는 열아홉 살이고 강진에 있는 형 집에 얹혀살며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한 여자에 풋정을 주었지만 돈 많은 이의 숨겨진 애인이었다. 십여 년이 지나 다시 내려간 강진은 존재하지 않았고, 꽃다운 시절이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가지지 못했고, 이룰 수 없었기 때문에 화양연화로 남아있지 않았을까. 기억의 나날들은 그렇게 아스라이 조각조각 흩어지고 만다.


흔히 가장 빛나는 시기를 청춘(靑春)이라 하지만, 탐탁지는 않다. 지금 청년세대에게 과연 푸른 봄을 즐길 여유가 있기는 한가 싶다. 돌아보면 나 또한 푸른 봄의 기억은 아련하다. 꽃은 반개화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만개한 꽃은 곧 최후를 맞게 되고 지고나면 추하다.  "꽃답다는 것은 지고 나면 그만큼 더 처참하고 힘들게 마련"이라는 말이 그렇다.




이문열 소설 『젊은 날의 초상』표지(왼쪽)과 곽지균 감독의 영화 「젊은 날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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