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레스트 하이 Sep 30. 2022

상처 없이 존재하지 않는 사랑의 대격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과 「헤어질 결심」



폴란드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의 대사를 순차적으로 적었다. 19살 소년 토메크와 농염한 연상의 여자 두 사람의 이야기다.
 
저녁 8시 30분, 토메크는 어김없이 망원경을 통해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매혹적인 여자 마그다를 훔쳐본다. 호기심은 곧 사랑으로 변한다. 토메크의 애착은 주체되지 않는다. 그녀와 하고 싶은 건 없다. 그냥 그녀를 사랑할 뿐이다.
 
어느 날 어깨를 들먹이며 우는 마그다의 모습은 본 후 사랑을 고백한다. 마그다는 가당치 않다. 마그다는 토메크를 자신의 아파트로 유혹해 "사랑은 서로 손을 문지르고 정액을 배출하는 행위"일뿐이라고 비웃는다. 모욕감을 느낀 토메크는 면도날로 손목을 그었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그제야 실수했음을 안 마그다는 토메크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매일 밤 그의 방을 훔쳐본다. 토메크가 돌아온 날, 마그다는 그의 망원경을 통해 자신의 방을 들여다본다. 가장 슬펐던 그날 토메크가 환영이 다가와 자기를 위로해 줬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제 토메크는 마그다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




망원경을 통해 서로를 훔쳐보는 토메크와 마그다




영화 자체가 관음의 발화인데 훔쳐보기가 소재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모세의 십계’를 주제로 10편의 연작 영화를 구상했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은 ‘간음하지 말라’가 주제다. 그리고 '살인하지 말라' 계명을 주제로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만든 후 1996년 유명을 달리했다. 
 
사랑은 상대적이다. 다가가면 물러나고 뒷걸음치면 쫓아온다. 그래서 사랑의 속성은 상처 입기다. 영롱한 진주도 조갯살의 상처가 변한 것이며, 상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영화도, 소설도, 시가 될 수가 없다. 백미현의 노래 “내 삶의 전부를 눈물로 채워도 아마 난 평생 못 잊을지도 몰라"라는 가사만큼 비장하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영화 포스터


  

사랑이란 상처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지나간 사랑을 말하는 이유는 바로 그 상처 때문이다."  - 『허연의 책과 지성』에서 재인용

  

불가리아 태생의 구조주의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사랑의 역사』에서 한 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크리스테바는 “사랑은 대격변이라고도 했다. 영화를 다시 본 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떠올렸다. 여기서도 사랑은 사건이었고 대격변이었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 「헤어질 결심」 중


매거진의 이전글 영원한 에트랑제 카뮈를 추억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