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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un Kim Aug 22. 2021

말하지 못한 이야기: 경쟁에서 전쟁으로 후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그리고 페이서스 이야기

공식 링크: https://www.netflix.com/kr/title/81026439


필자는 상당한 스포츠 덕후이고 ‘라스트 댄스’를 통해 본격 넷플릭스 스포츠 다큐에 입문했다. 이후 아넬카, 펠레 다큐 등을 재밌게 봤는데, 최근에 올라온 ‘말하지 못한 이야기’ 시리즈의 1편인 ‘경쟁에서 전쟁으로’ 또한 매우 인상적으로 본 터라 간략히 리뷰를 남겨본다.

1시간 여에 걸쳐 다큐가 다루는 사건은 2004년 11월 19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당시 홈 구장인 팰리스 앳 디 오번 힐스에서 벌어진 선수 간 충돌 및 이어진 대규모 소요사태다. https://www.youtube.com/watch?v=ghtDbOisWtA


당시 경기 종료 1분 여를 남겨둔 상황, 15점의 리드를 안고 있던 페이서스의 론 아테스트는 상대 센터 벤 월러스의 레이업을 거칠게 저지한다. 경기 승패가 사실상 갈린 ‘가비지 타임’에는 서로 간에 불필요한 거친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이자 상식인데, 아테스트가 직접적으로 이를 깨면서 두 선수 간 몸싸움이 발생한다. (참고로 파울을 가한 아테스트는 데니스 로드맨 못지 않게 기행을 벌이는 캐릭터로 유명했고, 파울을 당한 월러스는 엄청난 힘, 성깔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선수였다.)


모두가 두 선수를 말리는 사이, 아테스트는 경기 기록석에 눕는 행동을 보이는데, 이 때 그에게 날아온 맥주 컵이 직접적인 사태의 신호탄이 되었다. 아테스트는 자신에게 컵을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관중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고, 인디애나 선수들과 몇몇 피스톤스 팬들 간 몸싸움으로 번진다.


언론은 사건 이후, 대대적으로 NBA 선수들의 오만함과 미성숙함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던 모양이다. 아테스트의 행동은 당연히 프로 선수로선 절대 해서 안 되는 행동임이 분명했고, 이로 인한 포화는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큐는 여기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다. 당시 사건의 중심에 있던 선수들과 몇몇 관중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 기저에 깔린 배경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피스톤스와 페이서스 간 강한 라이벌 의식, 직전 시즌 우승을 경험한 피스톤스 관중들의 분위기 이 둘은 직접적은 아니지만, 분명히 본 사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요소임은 분명해 보인다.


다큐를 보면서 가장 흥미롭게 다가온 부분은 이날 관중들과 직접적인 충돌을 빚었던 아테스트, 스티븐 잭슨, 저메인 오닐을 프로 스포츠의 근간을 흔든 피의자가 아닌 희생양처럼 묘사한 점이었다. 당시 뉴스로 사건을 접했던 입장에선 저들을 ‘관중과 싸운 XX놈’ 정도로 여기고 지나갔었는데, 다큐는 전후 사정을 깊게 다루면서 선수들에게 과도한 책임이 지워졌다는 논지를 전한다. 다큐 중후반에 등장하는 사건 담당 검사 역시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만 한 일은 아니었다는 의견을 전할 정도이니…


사건 이후 NBA의 데이비드 스턴 총재는 아테스트, 스티븐 잭슨, 오닐에게 각각 잔여시즌, 30, 25경기 출전 징계를 내리는데, NBA가 한 시즌에 82경기를 치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는 04/05 시즌 초반이었다) 페이서스에게 상당한 철퇴가 내려진 셈이었다. 이들이 당시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힌 팀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해당 사건의 여파가 선수들과 구단에게 얼마나 컸을지… 물론, 페이서스는 해당 시즌에도 동부 컨퍼런스 3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긴 했고,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지만, 선수와 구단에게 농구 내외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가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을 지울 순 없어 보인다. (얄궂게도 페이서스는 플레이오프서 피스톤스에 2–4로 패배하며 시즌을 접는다)            


2004/05시즌 페이서스 정규시즌 성적: 아테스트의 초반 흐름은 엄청났으나…


이 사건이 다큐로 만들어질 정도로 회자되는 이유, 특히 페이서스 팬들에게 더 큰 아쉬움을 남기게 되는 이유는 분명했다. 이 시즌이 페이서스 및 주요 선수들의 주요 변곡점이 됐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역사 상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시즌(페이서스는 NBA/ABA 통합 후 우승이 없음) 을 끝으로 프랜차이즈 스타 레지 밀러가 은퇴를 선언했으며, 아테스트는 더는 페이서스의 유니폼을 입을 수 없다며 도망치듯 이듬해 팀을 떠났다. 잭슨 역시 06/07시즌을 끝으로 페이서스를 떠났고, 저메인 오닐은 06/07시즌을 끝으로 급격한 기량 하락을 겪으며 팀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사건의 중심에 있었으며, 팀을 버리고 떠난 아테스트가 이들 중 가장 먼저 우승 반지를 거머쥐었는데…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잭슨 역시 스퍼스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밀러와 오닐만…)            



선수 외에 페이서스의 당시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다큐에 참여한 도니 월쉬(당시 단장)는 프랜차이즈 관점에서 당시의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코멘트를 남긴다. '왕조'가 5년 이상 유지되기 쉽지 않은 미 프로스포츠 시스템의 생리 상, 단장은 팀이 우승에 도전할 적기를 판단하고 이를 위해 팀의 구조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월쉬는 04/05시즌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을 만들었고(당시 시즌 전 우승 배당률 7위, 동부에선 피스톤스에 이어 2위), 컨퍼런스 라이벌 피스톤스를 원정에서 찍어누를 만큼 그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애석하게도, 피스톤스를 상대로 페이서스의 경쟁력을 증명한 날, 팀은 진정 우승에 도전할 만한 동력을 잃고 말았지만... 


아테스트가 복귀한 06/07시즌에도 페이서스는 충분히 우승에 도전이 가능한 영역에 자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큐에서도 언급되듯 아테스트는 인디애나에 남기를 거부했고, 결국 월쉬가 만들어놓은 팀은 플레이오프 2라운드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페이서스는 이토록 허무하게 트로피 도전 기회와 그 시대를 잃어버린 것이다. 06/07시즌을 끝으로 플레이오프 경쟁력을 잃어버린 페이서스가 다시금 플레이오프 무대에 오른 것은 4시즌이 흐른 10/11시즌이었다.


히버트와 그레인저를 중심으로 경쟁력을 되찾은 페이서스는 폴 조지라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등장과 함께 동부 컨퍼런스 대권 도전에 나선다. 조지가 입단한 10/11시즌 이후 페이서스는 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고, 컨퍼런스 파이널 무대를 두 번이나 오르지만, 이때 동부 컨퍼런스에는 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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