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종 세트 다하는 아기
애월이는 얼굴에서 점점 유아의 티가 난다. 밤송이 안에 꽉 들어찬 알밤 같던 얼굴이 (비교적) 얄쌍해지고, 목이 조금 길어지면서 아기에서 아이가 되어간다. 미쉐린타이어 캐릭터 같던 팔과 다리도 조금씩 조금씩 모르는 새에 길어지면서, 올록볼록 주름지던 데가 하나둘 사라져 간다. 뒷머리를 미용 가위로 조금 다듬어 주니 일자로 뒷목이 시원하게 드러난 모양새가 더는 부드러운 배냇머리의 아기가 아니라는 인식을 내 눈 앞에 흔든다.
10개월이 넘으니 예쁜 짓, 귀여운 짓, 사랑스러운 짓을 모두 한다. 엄빠가 하는 행동을 제 나름대로 따라 하는 자깝스러운 모습은 또 얼마나 깜찍한지 모른다. 물을 마시고는 캬- 소리를 따라 내고, 작달막한 손으로 빨래를 탁탁 터는 흉내도 낸다(제법이다). 물은 컵에 마셔야 하고 가끔은 밥도 젓가락으로 먹어야 한다. 그리고 저번부터 뽀뽀를 배웠다(우리가 뽀뽀를 많이 하니까). 덕분에 나와 남편의 볼은 늘 침범벅. 뽀뽀를 받을 때면 아기 역시 부모를 기쁘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구나, 느낀다.
내가 엄마 껌딱지였기에 그런진 몰라도(유전인가) 애월이 역시 내 껌딱지다. 아빠보다도 엄마인 내가 늘 애월이 마음속의 첫 번째 사람임을 매 순간 알게 된다. 24시간 부자동실을 하며 애월이가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케어한 사람은 아빠인데도 말이다. 남편은 자신이 애월이에게 두 번째 사람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섭섭해하는 듯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배에 열 달 품은 사람은 나인걸.
애월이의 귀엽고 예쁜 짓을 다 보는 데다가 아기에게서 사랑까지 듬뿍 받으니 참 행복하다. 나도 애월이를 사랑하고 애월이도 나를 사랑하고. 견딜 수 없이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껌딱지를 옆에 끼고 있는 이때가 너무나 소중하다. 이유식 안 먹겠다고 징징거리는 모습도, 옷 입히려면 궁둥이 빨빨거리며 도망가는 모습도, 부엌에서 하는 일 구경 좀 하게 빨리 안으라고 낑낑 우는 모습도 모두. 이때의 애월이는 무릎도 꿇고 손을 하늘로 쭉 뻗고 있다(얼른 겨드랑이에 손을 껴서 안아줘요, 엄마! 부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어요 - 라는 긴 문장을 단숨에 표현하는 몸짓이다).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절대 안 될 존재가 되는 이 경험은 이상하고도 특별한 것 같다. 자식을 낳아봐야만 알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삶의 경험 중 하나이지 않나, 조심스럽게 적어 본다. 나는 애월이를 낳기 전까진 나 자신에게 자격이 없다느니 쓸모가 없다느니 따위의 부정적인 되먹임을 일삼았었는데, 애월이를 낳고 처음으로 내가 나 자신 이대로 존재해도 괜찮음을 알았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애월이는 나를 필요로 했고 나를 사랑했으니까. 나는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나 자신에게도.
그래서인지 요즘 고착돼 있던 마음이 바뀌고 있다. 마음 틈새를 비집고 나오려는 불평과 한탄이 어느 순간 자랑하는 것처럼 들리더라. 누군가가 부러워할 삶을 살고 있더라는 대전환. 내가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며 살았을지언정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놀라웠다. 아기가 사랑으로 나에게 준 선물이다. 언젠가 커서 내 품을 벗어난다 해도, 그때에도 나에게 여전히 남아 반짝거릴 선물. 신기한 일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너도 너를 사랑하고 나도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
24.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