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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23. 2021

남의 사진을 왜 프로필로 쓰세요?

내 꺼도 내 꺼고 너 꺼도 내 꺼인가요?

아이가 전화, 메신저, 인터넷의 개념을 이해한 후에는 누군가에게 아이 사진을 전송하거나 아이 사진을 게재할 때 아이에게 반드시 허락을 받고 있다. 아이 초상권의 소유자는 내가 아니라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묻기가 번거로워져 이제 아이 사진은 어디에도 공유하지 않게 되었다. 카카오톡 프로필엔 몇 년째 풍경 사진만 걸려 있고, 브런치에 게재된 몇 안 되는 아이의 뒷모습이나 아이가 적은 글, 아이가 그린 그림 사진은 모두 아이의 허락을 받고 올렸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지인과의 소통을 위해 계정만 있을 뿐, 우리 가족 사진은 몇 년 동안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간혹 자신의 아이들 사진이 빼곡한 친구의 피드를 보고 있으면 그러려니 한다. 아이와 합의 하에 사진을 업로드했든지, 부모의 합리적인 판단 하에 사진을 게재했으리라 여길 뿐, 별다른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별다른 생각이 드는 일이 최근 발생했으니, 바로 시어머니께서 아이의 최근 정면 사진을 프로필로 걸어놓으신 거다. 평소 남의 프로필에 관심이 없는 나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지나쳤을 수도 있으나, 프로필 수정 시 친구 목록 상단에 표시되도록 최근 변경된 카카오톡 UI 때문에 포착하고 말았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예전에도 어머님은 아이 사진을 프로필로 가끔 쓰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 김에 양가 부모님의 프로필을 전부 뒤져보았다.


시어머니 프로필: 손녀의 최근 정면 사진

시아버지 프로필: 본인 사진(본인 이름으로는 'ㅇㅇㅇ 회장'이라고 적어 놓으셨다. 아버님은 퇴직 공무원이신데 언제 회장이 되셨지?)

친정어머니 프로필: 풍경 사진

친정아버지 프로필: 본인 사진이지만 프로필 뒤의 커버 사진은 몇 년 전 손녀 사진


딸아이는 태어나서 3년을 한국에서 살았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조부모의 손길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시부모님은 아이가 방글거릴 때엔 손뼉 치며 좋아라 하시다가 아이가 투정 부릴 기미가 보이면 "자, 이제 엄마한테 가자!" 하셨고, 친정 부모님은 손녀의 투정을 받아주다 결국엔 당신들이 역정을 내는 스타일이었다. 평소 하루 종일 혼자서 아이를 보던 나는 양가 부모님을 만나 어디 놀러라도 가는 날엔 잠시 아이에게서 눈을 떼고 남편과 주변 구경을 하곤 했는데 꼭 그런 찰나에 아이는 어딘가에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느새 혼자 앞서 걷고 있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손녀는 가끔 마주치고 싶은 예쁜 관상화일 뿐, 잠시라도 직접 물을 주고 흙을 갈며 보살피고 싶은 묘목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 분들께서 손녀가 미국으로 이민 온 후엔 괜히 아쉬우신지 영상통화 중에 애틋한 대사를 쏟아내기도 해서 나는 가끔 헛웃음이 난다(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부모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자식도 손주도,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이렇게 양가 부모님에게 냉랭한 나는 시어머니의 프로필에서 아이의 정면 사진을 발견하곤 심히 불쾌했다. 아이의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적 없는 분께서 갑자기 무슨 자격으로 아이의 초상권을 함부로 사용하시나? 하지만 시어머니는 그런 논리를 이해할 분이 아니다. 자식 일에도, 손녀 일에도, 당신에게 자동적으로 권한이 있으리라 믿는 분이시다. 아마도 "내가 내 손녀딸 사진도 마음대로 못 쓰니?" 하실 테고, "네, 못 쓰세요. 저도 안 쓰는데요?"하면 기가 차다고 하실 거였다. 기가 차시든 말든 예전 같았으면 내 생각을 단도직입적으로 밝혔겠으나 요즘은 그런 노력이 에너지 낭비로 느껴진다.


그래서 일단 시어머니의 프로필을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아이가 괜찮다고 하면 조용히 넘어가고, 아이가 싫다고 하면 프로필 변경을 요청 드릴 요량으로. 초상권에 대한 인식이 아무리 없으시더라도 손녀딸이 싫다고 하는데 굳이 고집 부리진 않으실 테니까.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타인의 프로필에 게재된 자기 사진을 보고 황당해했다. "It's like it's MY account...(꼭 내 계정인 것만 같네...)" 하면서. 자기 사진이 사용되었다는 사실보다는 사전 동의를 구하는 연락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에 불쾌해했다. 그리곤 그 사진을 열람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자신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리스크는 없는지, 납치 등 범죄에 이용될 여지가 있는지를 묻고는 최종적으로 괜찮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시어머니의 프로필엔 한동안 딸아이의 최근 정면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었다. 보고 있자면 참 요상했다. 내 사진이 부지불식간에 남의 프로필에 걸려 있는 것, 상상만 해도 요상한데 왜 아이에겐 그 간단한 역지사지를 실천해주지 않을까?


한국에 살던 시절 가입했으나 이젠 탈퇴한 지역 맘까페가 있다. 그 까페 회원들은 자기 아이들의 엉뚱하고 웃긴 사진을 많이도 공유했다. "아들 지못미~" "딸 지못미 ^^;"하면서. 지키지 못해 미안하면 사진을 올리지라도 말든가, 미안하다면서 사진까지 동네방네 공개하는 건 또 뭔가. 그러더니 몇 년 전에는 요즘 아이들이 제 휴대폰으로 부모의 일상을 몰래 촬영한 뒤 메신저로 친구들과 공유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엄마!"하고 불렀을 때 무심코 돌아보는 엄마의 얼굴 등 순간 포착한 사진을 친구들과 나누며 재미있어 한다고. 그 뉴스엔 아이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많이도 달렸는데 순간 나는 어른들의 이중성에 진절머리가 났다. 무방비한 상대를 불시에 촬영하고 남과 공유하며 웃음 소재로 삼는 건 부모가 어린 자식들을 상대로 아무렇지 않게 해온 일이다. 어른이 아이를 상대로 그 짓을 할 땐 재미있기만 했는데, 아이가 어른을 상대로 똑같은 짓을 하니 그건 또 괘씸하고 화가 나나?


꼭 본인이 역으로 당해봐야만 불쾌한 줄 아는 일들이 있다. 내 아이 사진은 당신 프로필에 쓰지 말아달라고, 역지사지로 좀 느껴보라는 요지로 그들의 사진을 내 프로필에 올리는 상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어른 사진이랑 애 사진이랑 같냐!"


그래서 그들과 나는 평행선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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