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총을 쐈다. 전쟁이다. 뉴스에서는 우크라이나인 수백 명이 죽었다 했다. 어제도 오늘도 뉴스는 죽은 이가 몇 명인지 알려준다. 막연한 공포에 아이는 울었고 카메라는 아이의 눈물을 비췄다.
축구경기장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이 된 듯했다. 내가 아이들을 돌보며 어제와 비슷한 일상을 누릴 때, 누군가는 일상을 폭격 맞았다.뉴스에서 우크라이나인이 한국 어느 성당에 모여 기도회를 여는 모습을 보여줬다. 우크라이나인이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떨리는 두 손이 보였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기도 밖에 없구나'고 생각했다. 공허했고 허무했다.
'전쟁' 이라는 단어는 19세기, 과거에만 기록된 역사인 줄 알았다. 21세기와 전쟁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 착각했다.
아니, 수시로 일어났던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외면해왔던 거였다.
'러시아가 수도 키예프 공격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항전을 시작했다.'
뉴스는 시시각각 변화는 전쟁 상황을 알렸다.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기도 밖에 없는 게 아니라, 기도라도 해야 했다.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는 일에 죄책감이 들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이들의 눈물이 자꾸 생각났다. 이름모를 절의 범종 소리에 맞춰 108배를 시작했다. 108로 시작한 숫자가 하나씩 줄 수록 허벅지 근육이 찌른 듯 아팠다. 형용할 수 없는 전쟁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머리 위로 손을 모아 높이고 무릎을 꿇어 하늘 위 누군가를 향해 빌었다. 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 마리아든,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무고한 희생을 막아줬음 했다. 신에게 바랄 게 없었는데, 적어도 자라는 아이들이 제게 주어진 명에 맞춰 살 수 있길 바란다고 욌다.
할 수 있는 게 기도 밖에 없는 게 아니라 기도라도 해야 했다.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는 내가 죄책감을 덜 수 있는 유일한 행위였다.
신이 존재한다면, 기도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줬음 한다.병과 졸 뒤에 숨은 왕이 지옥에 가서 마땅한 벌을 받게 해달라고.
욕심과 야욕에 쓰러져가는 생을 막아달라고.
두 손을 모아 머리 위로 올리고 다시 무릎을 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