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샤워를 받던 몬스테라 줄기 사이에 새 줄기가 삐죽 보였다. 기존 화분보다 더 너른 화분으로 분갈이한 뒤 몬스테라는 하얀 새 뿌리를 틔웠다. 바스락 소리도 없이 흙을 향해 뿌리를 뻗었다. 뿌리가 잘 내리도록, 뿌리 옆 포슬포슬한 흙을 손으로 살살 덮어줬다.
딸이 어린이집 텃밭에서 해와 바람, 흙의 기운이 가득 담긴 배추 한 포기를 들고 왔다. 파릇파릇 잎이 살아있는 배추를 무심히 쳐다보다, '배추전을 할까?'하고 잠깐 고민했다. 그러다 아들을 위해 집에 있는 재료를 뒤졌다. 며칠간 백김치 맛에 빠진 아들은 백김치가 줄어드는 반찬통을 보고 아쉬워했다. 나는 배추 한 포기를 잘게 썰어 백김치를 담았다.
밀려들었던 원고를 모두 탈고했다. 타자기로부터 해방된 내 손가락은 자판기를 치던 대신에 다시 연필을 잡았다. 연필을 잡는 순간 난 해방이다. 밀려들었던 원고만큼 쌓였던 스트레스로부터. 연필심이 종이에 맞닿으면 '사각' 소리가 났다. 단순하고 지루한 작업이지만, 내 몸에 집중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연필을 잡는 위치, 손과 팔 힘의 강약 조절을 계속해야 했다.
보름 뒤면 산타가 찾아오는 날이다. 나와 신랑은 산타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떼쓰는 아이들을 산타의 힘을 빌려 어르고 달랬다. 토요일 아침에는 창고에 있던 트리를 꺼냈다. 상자에서 트리 나무와 오그먼트가 우두두두 떨어졌다. 문득 '무교인 우리가 알뜰하게도 성탄절을 챙긴다' 싶어 헛웃음이 났다.
아들은 산타 할아버지를 그렸다며, 어린이집 가방에서 종이를 꺼낸다. 그림을 보니 아들 손에 이제 제법 힘이 생겼다.
아이들과 트리 나무를 장식하고, 전구에 불을 켰다. 반짝이는 조명과 함께 아이들의 웃음도 빛났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맺음 달. 햇살과 바람, 사랑을 머금은 아이들, 식물, 나. 모두 조용하게, 부지런히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