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난생 처음 부케를 들었다

by 김예린

“이제 머리 아프다. 옛날이야기 못하겠다.”


할머니 말을 끝으로 난 노트북을 닫았다. 할머니가 ‘이복연’ 이름으로 살았던 지난날을 A4 5장으로 압축시켰다. 그 안에 80년 시간이 진하게 농축됐다. 힘들었고, 배고팠던 삶을 쌓아 올린 시간 뒤 할머니는 요양병원 침대 위에 누웠다. 가로 100cm, 세로 200 cm 침대 하나. 할머니가 매일 밥 먹고, 배변을 보고, 티브이를 시청하는 좁은 생활 반경이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그 침대 위를 벗어날 수 없는 할머니였다.


“결혼하지 않을래?”


남자 친구는 얼마 전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결혼이라….’


어떻게 말을 꺼내질 몰라 턱까지 차오르는 말을 몇 번이고 삼켜댔다. 엄마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낼 시점만 호시탐탐 찾고 있었다. '이때다!' 엄마가 출근하기 전 화장대에 앉자 난 잽싸게 화장대 옆 침대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난 엄마에게 쫑알쫑알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해대다.


“엄마, 나 결혼하고 싶은데….”


대뜸 말을 꺼냈다.


“생각해 보자.”


엄마의 말끝에 결혼 계획이 10월로 잡혔다. 상견례, 결혼식장 예약, 신혼집 계약 등 결혼 준비가 계획대로 진행됐다.


“할머니, 나 결혼하려고.”


"우리 예린이 웨딩드레스 입은 거 보고 싶은데…."


결혼 소식을 전하자 돌아오는 할머니 말끝에는 아쉬움이 한가득 묻어났다.


“할머니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꼭 내 결혼식에도 와야 돼.”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엄마의 결혼식 사진을 보며 했던 그 말을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삼켰다. 결혼식 혼주 측 앉아있을 할머니 얼굴을 본다는 건 애당초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웨딩 촬영하며 할머니의 아쉬움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자꾸만 걸렸다.



‘웨딩 촬영이 끝나면 사진 꼭 보여드려야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한 나의 웨딩 사진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할머니가 드시고 싶어 회 초밥과 과일을 들고 요양병원을 다시 찾았다.


“할머니, 짠~!”


웨딩사진을 펄럭이며 펼쳐 보이자, 할머니는 내 손에 있던 사진을 잡아한 장씩 넘기며 할머니 눈에 담아 넣었다. 사진을 보는 내내 할머니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이 사진 잘 나왔네, 나무가 이렇게 좋은 데가 어딨드노?”

“사진 찍는 데는 얼마던데? 많이 비싸지 않더냐?”


할머니는 사진 보는 내내 물음표를 던져댔다.


“할머니 잠시만 있어 봐.”


물음표에 일일이 답하면서 주섬주섬 종이 가방에서 화관과 부케를 꺼냈다. 웨딩촬영 때 쓰려고 부산 자유도매시장서 조화를 일일이 골라, 자르고 붙인 나만의 화관, 부케였다. 화관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머리에 씌우고, 할머니 손에 부케를 쥐어 드렸다.


“이런 거 안 해봐서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신랑 얼굴도 모른 채, 위안부로 잡혀가는 걸 막기 위해 후딱 치러진 혼사였다. 정화수를 떠 놓고 백년가약을 맺었던 할머니는 태어나서 처음 머리에 화관을 쓰고, 손에 부케를 들었다. 결혼사진 한 장 없는 할머니의 결혼. 부케를 든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슬며시 미소 지었다.


“할머니 기념을 사진 찍자. 하나 둘 셋!”


카메라를 들이대니 할머니 얼굴에 수줍음이 가득했다. 결혼식 날 내 앞에 앉아 웃는 할머니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나의 아쉬움, 곱게 한복 차려 입고 손녀 결혼식에 가지 못하는 할머니의 안타까움.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여백을 나만의 방식으로 채웠다. 요란스럽게 카메라로 할머니와 사진을 찍고, 나와 할머니는 서로가 나온 사진을 한참 봤다.


‘손녀 결혼식 못 봐도, 손녀가 낳은 증손자. 증손녀는 안아 보셔야 할 텐데.’

할머니와 사진을 보다 욕심이 생겼다. 조금 더, 할머니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욕심’이 말로 튀어나오는 순간, 결말 없는 기대와 희망이 돼 서로를 아프게만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시침바늘이 움직였다.


“이제 가봐라.”


할머니가 손짓했다.


“또 올게, 할머니.”


말을 건네며 뼈만 남은 할머니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병원 엘리베이터가 닫히기 전 할머니의 동그란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렇게라도 했으니 잘했다. 잘했어. 잘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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