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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제로, 쏘지 않는 벌의 시대

꽃가루는 알고리즘이 나르고, 자연은 시뮬레이션된다

by 미래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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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다." 몇년 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남긴 것인지 논란이 일었던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지금, 꿀벌은 정말로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인류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날개를 설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인공 벌의 시대를 상상해야 할 때다.


침묵의 봄, 그리고 위기의 징후들

꿀벌은 단순히 꿀을 만드는 곤충이 아니다. 이 작은 생명체는 전 세계 식량 작물의 70% 이상을 수분시키는, 인류 생존의 숨겨진 동반자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꿀벌은 급격히 감소해 왔다. 미국에서는 연평균 45%의 꿀벌 군집이 소실되고 있고, 2022년 한국에서는 78억 마리의 꿀벌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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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인은 복합적이다. 살충제의 과도한 사용, 기후 변화, 기생충과 질병, 서식지 파괴와 단일작물 중심 농업.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꿀벌의 면역체계를 무너뜨리고, 생태계의 도미노를 무너뜨리고 있다.


식탁과 생태계를 덮치는 나비효과

꿀벌의 부재는 단순히 꿀이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아몬드, 사과, 블루베리, 체리 같은 작물들의 수확량이 급감하고, 이는 곧 식량 안보 위기로 직결된다. 꿀벌은 생태계의 핵심종으로서 식물의 번식을 돕고, 이는 초식동물과 육식동물까지 이어지는 먹이사슬 전체를 지탱한다. 그 공백은 상상 이상으로 광범위하다.


기술의 날개: 인공 벌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꿀벌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인간은 기술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세 가지 기술 흐름이 있다.


1. 로봇 벌 (RoboBee) – 하버드 Wyss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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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교 Wyss Institute는 '로보비(RoboBee)' 프로젝트를 통해 인공 벌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이들은 초소형의 날개 달린 로봇을 개발하여, 실제 꿀벌처럼 빠르고 민첩하게 공중을 날도록 설계했다. 초기 버전은 초당 120번 날개를 퍼덕이며 비행할 수 있었고, 이후 모델은 수직 이착륙과 군집비행 기술까지 포함되었다. 그들의 목표는 수분뿐 아니라 재난 지역 정찰, 기후 측정, 군집 기반 AI 비행 기술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비행시간, 에너지 효율성, 환경 적응력 문제는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2. 스마트 벌통 (Smart Hive) – 이스라엘 Beewise

이스라엘 스타트업 'Beewise'는 자연 꿀벌을 지키기 위한 스마트 벌통 'Beehome'을 개발했다. 이 벌통은 태양광 기반의 에너지로 작동하며, 내부에 AI 기반 센서 시스템을 탑재해 벌통 내 온도, 습도, 꿀 생산량, 꿀벌 움직임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질병이나 외부 침입 징후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통제 장치가 작동해 조치를 취한다. 이 시스템은 꿀벌 폐사율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양봉업자의 노동 부담도 줄였다. Beewise는 이 벌통을 통해 양봉의 산업화를 한층 앞당기고 있으며, 현재 북미와 유럽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3. 인공 수분 드론 – 화랑컴퍼니 (한국)

한국의 스타트업 '화랑컴퍼니'는 꿀벌의 수분 기능을 대체하기 위한 현실적인 접근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개발한 드론 '왕벌'은 과수원 특화 수분용 드론으로, 인공지능 기반의 경로 설정과 고정밀 분사 시스템을 결합했다. 특정 작물에 따라 최적의 수분 시간과 위치를 계산하여,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넓은 면적을 빠르게 커버할 수 있다. 현재 이 기술은 국내 일부 배·사과 농장 등에 시범 적용 중이며, 향후 자율비행 알고리즘과 센서 정밀도가 더해질 경우 글로벌 확장을 노리고 있다.


상상해 보자: 2050년, 인공 벌이 일상이 된 세상

하나의 시나리오에서는 자연 꿀벌과 인공 벌이 공존한다. 농장주는 태블릿으로 꿀벌의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부족한 지역엔 로봇 벌을 투입한다. 생태계와 기술의 균형이 유지된다. 하지만 더 극단적인 미래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시나리오 A: 생물이 없는 도시 – '디자인된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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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이후, 몇몇 고밀도 도시는 '자연 생물'을 통제 불가능한 변수로 간주하고 완전히 배제한다. 공원은 생물학적 식물이 아니라 생체 시뮬레이션 식물로 채워지고, 공기를 정화하는 것은 이끼가 아니라 나노 드론이다. 로봇 벌은 수분 활동을 넘어서, 생태계를 '연출'하는 역할을 한다. 생명이 아니라, 생명의 모방으로 구성된 환경. 사람들은 이 가짜 자연 속에서 '충분히 자연스러운 것'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놀랍게도 이 환경은 너무나 통제되고, 예측 가능하며, 쾌적하다. 자율주행이 완벽해져 더 이상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시대처럼 말이다. 어쩌면 먼 미래에는 사람이 스스로 운전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금지되고, 레이스 트랙이나 승마장처럼 특별한 체험 공간에서만 유료로 '운전'을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과거의 기술 유물을 복원하듯이 말이다.


시나리오 B: 우주 생태계의 첫 정착민 – '코드로 짜인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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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개척기지. 지구의 꿀벌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꿀벌의 역할은 로봇 벌이 전담한다. 대기압, 중력, 온도 등 환경이 전혀 다른 이곳에서 유일하게 작동 가능한 생명 시스템은 알고리즘이다. 로봇 벌은 단지 수분만 수행하지 않는다. 식물 생장 주기를 관리하고, 광합성 조도를 조정하며, 때로는 인류의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 '자연의 리듬'을 연출한다.


이제 인간은 묻는다. "이 환경은 살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있는 것처럼 시뮬레이션된 것일까?" 그리고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말하는 "자연스럽다"는 감각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


오늘의 10대들은 플로피디스크 모양의 '저장' 아이콘을 보고 "이건 뭐에요?"라고 묻는다. 다이얼 돌리는 전화기 그림을 보고 전화번호부 아이콘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2050년의 아이들은, 진짜 나무와 인공 나무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을까? 자연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카이브 된 정서로 전락하지 않을까?

그때가 오면, 인간은 다시 이렇게 묻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건, 도대체 어떤 감각이었지?

우리는 인공 벌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꿀벌을 잃었는가, 그리고 꿀벌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다. 기술은 그 질문에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되살리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꿀벌 없는 세상에 적응할 준비보다, 꿀벌이 돌아올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준비가 더 시급하다. 진정한 미래는 로봇의 날개가 아니라, 자연의 날개가 다시 펄럭이는 풍경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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