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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의 심장. 얼마면 돼?

무한한 에너지, 그러나 유한한 '사용권리'에 대하여

by 미래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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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타크의 심장과 나의 테슬라


영화 <아이언맨>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테러리스트의 동굴에 갇힌 토니 스타크가 고철 덩어리를 두드려 만들어낸 푸른빛의 에너지원, '아크 원자로(Arc Reactor)'다.


그 주먹만 한 장치 하나가 강철 슈트를 하늘로 띄우고, 가슴에서 빔을 쏘아대며, 심지어 거대 빌딩의 전력을 감당한다. 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저거 하나만 있으면 정말 끝내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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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상황은 딴판이다. 나는 테슬라 모델 Y를 타고 있다. 어느 날 야근을 마치고 집에 늦게 도착했는데, 아파트 충전기에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다음 날 새벽같이 지방 출장을 가야 하는데 말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자리가 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냥 잠이 들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새벽에도 빈자리는 없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집에 있는 내연기관 차를 끌고 나가야 했다. 문제는 거기서 터졌다. 비몽사몽간에 차를 바꿔 타느라, 테슬라 트렁크에 미리 챙겨뒀던 중요한 출장 물품들을 하나도 옮겨 싣지 못한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스스로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내 차에 아크 원자로가 달려 있었다면, 이런 바보 같은 일은 없었을 텐데."


충전 케이블을 꽂을 필요도 없고, 주유소를 찾을 필요도 없는 세상. 한 번 사면 폐차할 때까지 에너지가 닳지 않는 자동차. 과연 이것은 토니 스타크만의 공상일까?



거대한 발전소를 책상 위로, '마이크로 에너지' 개척자들


지금 전 세계는 에너지 전환 전쟁 중이다. CFS(Commonwealth Fusion Systems)헬리온 에너지(Helion Energy) 같은 거대 스타트업들은 축구장만 한 핵융합 발전소를 지어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이 만드는 것은 "더 깨끗하고 강력한 발전소"다.


하지만 오늘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발전소가 아니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 기계 안에서 직접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독립 에너지'를 꿈꾸는 곳들이다. 아이언맨의 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 무모한 도전자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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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통 안의 인공 태양: 아발란체 에너지 (Avalanche Energy) 모두가 거대한 토카막(도넛 모양의 핵융합 장치)을 만들 때, 이들은 "책상 위에 올릴 수 있는 핵융합 장치"를 만든다. '오비트론(Orbitron)'이라 불리는 이 장치는 놀랍게도 도시락통만 한 크기다. 수백만 도의 초고온 플라스마 대신 정전기장을 이용해 이온을 가두고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뽑아내겠다는 아이디어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하다. "드론, 로봇, 그리고 언젠가는 자동차에 탑재할 수 있는 핵융합 배터리를 만든다."


컨테이너에 담긴 원자력: 레이디언트 (Radiant Nuclear) 전 스페이스X 엔지니어들이 만든 이 회사는 "휴대용 원자력 발전기"를 만든다. 거대한 돔 형태의 원전이 아니라 트럭에 실을 수 있는 컨테이너 박스 크기의 원자로다. 물이 필요 없는 특수 냉각 방식을 사용해서, 사막이든 남극이든 트럭으로 싣고 가서 버튼만 누르면 전기가 펑펑 쏟아지는 그림을 그린다.


아름다운 초소형 원전: 오클로 (Oklo) 오클로는 샘 알트만(OpenAI CEO)이 투자해 유명해진 회사다. 이들은 핵폐기물을 연료로 재사용하는 초소형 원자로를 만드는데, 흥미로운 점은 디자인이다. 혐오 시설이 아니라 북유럽의 작은 펜션처럼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고 있다. 데이터센터나 미래의 아파트 단지 옆에 설치되어 20년 동안 연료 교체 없이 조용히 전기를 공급하는 미래를 꿈꾼다.



상상: 콘센트가 사라진 인류의 삶


이제 상상을 조금 더 과감하게 밀어보자. 만약 아발란체 에너지의 꿈처럼, 스마트폰만 한, 혹은 자동차 배터리만 한 크기의 '무한 에너지원'이 상용화된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변할까?


첫째, '이동'의 개념이 재정의된다. 전기차 충전소를 찾아 헤매던 나의 경험은 완전히 '옛날이야기'가 될 것이다. 드론은 20분 비행 후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대신, 24시간 하늘을 떠다니며 택배를 나르고 도시를 감시할 것이다. 비행기는 연료 보급 없이 지구를 여러 바퀴 돌 수 있다. 서울-뉴욕이라는 거리감 대신 "그냥 지구 한 바퀴 돌고 오자"가 될지도 모른다.


둘째, '진짜 오프 그리드(Off-Grid)'의 등장이다. 우리가 도시에 모여 사는 큰 이유는 상하수도와 전력망 때문이다. 하지만 집집마다 소형 원자로가 있다면? 깊은 산속이든, 전선 한 가닥 없는 무인도든, 심지어 우주 공간이든 전력망(Grid)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쾌적하게 살 수 있다. "서울을 떠나고 싶지만 전기 때문에 못 떠나는 삶"에서 "전기만큼은 내가 들고 다니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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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에너지의 '개인 소유' 시대가 열린다. 지금까지 에너지는 국가나 거대 기업이 공급하는 공공재였다. 전기요금 고지서와 유가 변동 뉴스에 일희일비했다. 하지만 개인이 평생 쓸 에너지를 손에 쥐게 된다면, '에너지 기업'의 힘은 약해지고, 대신 에너지 인프라의 OS나 안전 규제가 새로운 권력이 될 것이다.


무한한 에너지, 무한하지 않은 가격


여기서 아주 현실적이고도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좋다, 기술적으로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원이 나왔다 치자. 그런데... 도대체 이건 얼마짜리일까?"


아크 원자로 전지가 상용화되면 연료비는 0원에 수렴한다. 하지만 '공짜'가 될 리는 없다. 소프트웨어를 생각해 보자. 복제 비용은 0원이지만 우리는 매월 서브스크립션 비용을 내고 서비스를 사용한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제조 원가보다는 기술 특허료,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과 통제 비용'이 가격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은 태양에게 가격표는 어떤 방식으로 붙게 될까?


1) 에너지 통신사 모델: "출력(Bandwidth)을 팝니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지금의 통신사나 구독 경제 모델이다. 하드웨어(원자로)는 통신사가 라우터를 공짜로 주듯 저렴하게 보급된다. 하지만 그 기계의 '성능'을 쓰려면 월 구독료를 내야 한다.


Arc Basic (월 3만 원): 최대 출력 5kW 제한. (가정용 전등, 냉장고, TV 가능. 전기차 충전 불가)

Arc Standard (월 15만 원): 최대 출력 50kW. (전기차 급속 충전, 온 집안 냉난방 풀가동 가능)

Arc Enterprise (법인 문의): 출력 무제한, 24시간 관제 서비스 포함.


집에 있는 원자로는 사실 엄청난 출력을 낼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 락(Lock)이 걸려 있는 것이다. "고객님, 지금 난방이랑 인덕션을 동시에 켜시려니 출력이 부족하네요. 월 5천 원만 더 내시면 '부스터 모드'를 해제해 드립니다."라는 팝업 메시지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에너지는 공기처럼 흔해졌지만, '얼마나 큰 힘을 순간적으로 쓸 수 있는가'가 새로운 빈부격차의 기준이 된다.


2) 국가 기본권 모델: "생존을 위한 1인 1 아크" 에너지를 수도나 치안 같은 완전한 공공재, 나아가 '천부인권'으로 보는 관점이다. 아크 원자로는 무기로 전용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민간의 소유와 매매가 원천 금지된다. 대신 국가는 국민에게 '생존'을 대여한다.


아기가 태어나 출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국가 표준 아크 원자로 1기"가 배정된다. 이 장치는 평생 그 사람의 주거와 기본적인 이동을 책임진다. 죽을 때까지 난방비나 전기세 걱정은 없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더 빠르고 강력한 개인 우주선이나, 거대한 개인 서버를 돌리고 싶다면? 그때부터는 국가의 허가를 받은 '특수 면허'가 필요하다. 지금의 의료보험처럼, "최소한의 삶은 국가가 책임지되, 욕망을 실현하려면 막대한 세금을 내라"는 식의 타협점이 만들어질 것이다.


3) 암시장과 탈옥(Jailbreak): "위험을 사는 가격"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세 번째는 가장 위험하고 음습한 시나리오다. 공식 루트를 통해 공급되는 아크 원자로는 안전하지만 비싸고, 모든 사용 기록이 중앙 서버로 전송된다. 프라이버시를 원하거나, 비싼 구독료를 낼 돈이 없는 사람들은 뒷골목으로 향한다.


다크웹에서는 "출력 제한 해제 펌웨어"가 깔린 중고 원자로, 혹은 3D 프린터로 조악하게 만들어낸 "사제(Home-made) 아크"가 거래된다. 공식 제품은 사고가 나면 보험사가 보상해 주지만, 암시장의 물건은 터지면 그만이다. 이 세계에서 에너지의 가격은 화폐가 아니라 '리스크'로 매겨진다.


"이건 안전장치를 떼어내서 출력이 두 배야. 대신 과열되면 무조건 도망쳐야 해." 누군가는 100%의 안전을 위해 비싼 값을 치르고, 누군가는 돈을 아끼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에너지를 쓴다. 빈곤의 모습은 '에너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에너지를 쓰는 것'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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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무한해져도, 공짜가 되지는 않는다


앞서 상상한 시나리오들을 종합해 보면, 결론은 명확하다. 기술이 발전해 에너지 생산 비용이 '0'에 가까워지더라도,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 비용의 성격이 바뀔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연료' 값, 즉 자원의 희소성에 돈을 지불해 왔다. 석유를 캐내고 전기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소형 원자로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오면, 희소성은 사라진다. 그때 우리가 지불해야 할 돈은 '안전'과 '관리' 비용이 될 것이다.


주머니 속의 원자로가 폭발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시스템 이용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보험료, 그리고 강력한 에너지를 아무나 악용하지 못하게 막는 보안 비용이 그 자리를 채운다.


결국 미래의 에너지 고지서는 "전기를 얼마나 썼니?"를 묻는 게 아니라, "이 강력한 힘을 얼마나 안전하게 통제하고 있니?"를 묻는 청구서가 될 것이다. 기술은 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해 주겠지만, 그 기술을 안전하게 쓰는 건 여전히 사회적 합의와 비용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새벽의 텅 빈 배터리 앞에서


글을 마치며, 다시 주차장에 서 있는 내 테슬라를 본다. 덩그러니 열려 있는 충전구와 꼽혀있는 충전 케이블. 이 단순한 풍경이 오늘따라 유난히 번거롭게 느껴진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이언맨처럼 하늘을 날거나 지구를 구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출근길에 주유소에 들르지 않고, 여행지에서 충전소를 찾아 앱을 켜지 않고,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며 에어컨 온도를 조절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런 '사소한 자유'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발란체 에너지나 오클로 같은 기업들이 성공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충전'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서 '옛말'로 분류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 아이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전기차 충전기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물을 것이다.


"아빠, 옛날에는 차를 타려면 벽에 줄을 꽂고 한 시간씩 기다려야 했어?"


그 질문에 웃으며 "그때는 그게 당연했단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선 하나를 꽂고 빼는 그 귀찮음이 사라지는 것. 어쩌면 그게 기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행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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