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보고 싶은 영화를 어떠한 기준으로 선택하느냐에는 ‘누군가의 추천’이 굉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영화를 추천하는 방식에 어느 정도의 정성이 녹아들어 있느냐도 상당히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맥스 달튼의 전시가 그랬다. 나는 유명한 영화들을 보지 않은 ‘선택적 영화광’이다. 그러니까 보통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한 해에 몇 개씩 두고 숙제를 하듯 보는 부류. 얼마 전에는 <이터널 선샤인>을 봤고, 극장에서 재개봉을 하고 나서야 <타이타닉>을 봤다.
그런 내게 이번 전시 중 제1막 <영화의 순간들>은 빼곡한 영화의 추천과 같았다. 나는 <쥬라기 공원>도, <티파니에서 아침을>도, <스타워즈>도, <007>도 보지 않았다. 심지어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까지도. 지금까지 수많은 오마주를 마주하며 살았기 때문에 스포일러라는 말조차도 민망한 그 고전들. 맥스 달튼의 방식대로 재해석한 일러스트들이 줄을 서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온 고전들에서 맥스 달튼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작품을 보지도 않았으면서 향수를 논하는 것이 퍽 웃기기는 하지만, 그것을 끌어낼 수 있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라고 느껴진다.
2막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따라간 그의 그림이 그려져있다. <프렌치 디스패치>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까지. 맥스 달튼의 이름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그림들이기도 하다. 웨스 앤더슨의 대칭 강박을 고스란히 담아낸 정직한 일러스트들 아래서 ‘누군가를 좋아하면 닮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3막은 맥스 달튼의 인생을 그대로 담아놓았다. 그가 좋아했던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등 그 시대의 아티스트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해놓았다. 작품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취미와 취향으로 꾸며진 방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화가의 작업실’이다. 화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지, 그들의 작업실과 작업을 하는 장면을 그려놨다. 서양 미술사 수업 교수님이 짚어주시던 현대 미술 거장들의 이름이 빠르게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화가와 방이 닮아있는 풍경을 보면서 나는 어떠한 자취를 남기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기록은 언제나 향수를 동반한다. 향수는 내게는 슬픈 향을 배제할 수 없는 단어이기 때문에 건강한 그리움으로 꾸며진 공간이 더욱 낯설고 재미있다. 향수에 슬픔이 깃들지 않은 건강한 노스탤지어를 맛보고 싶다면 맥스 달튼의 전시를 방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