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디스 서평
사람의 심리를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은 장편소설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아마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에 한참 빠져있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만 읽는 것이 더 어려운 흡입력에 감탄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최근에는 무뎌진 집중력 탓에 장편에 흡수되기까지의 예열이 쉽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단편소설집이다.
그러나 단편소설집의 한계도 그만큼 분명하다. 짧은 시간 내에 독자를 글 안으로 포함(involved)시키지 못한다면 ‘이게 무슨 내용이냐’며 어리둥절하는 독자의 반응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스미스의 짧은 단편들은 색다른 도전이다.
하이스미스의 문장은 수려하다. ‘장례식 조화처럼, 죽음 그 자체처럼, 달콤하고 역한 향이었다’, ‘오후의 표면에 물거품 하나 일으키지 않고 갔다’와 같은 문장은 쉽게 독자들을 그 비현실같은 소설 속 배경으로 끌어들인다.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묘사된 배경 속에서 독자들은 헤매기 시작한다.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이 작가가 설치한 반전이 어디일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하이스미스의 함정은 ‘일상’이다. 그가 설정한 주인공들은 특별하지도, 비일상적으로 비틀어지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인간의 당연하고 단순한 욕구에 의해 행동하며, 그 행동의 결과도 정상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일상의 균열에서 하이스미스의 심리적 트랩이 시작된다.
[프림로즈는 분홍색이야], [미스 저스트와 초록색 체육복]은 인간의 불안감이 강박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나온다. 원하는 것 하나를 얻기 위해 몇 달간 광적으로 몰입하는 남편을 보는 아내, 자세 하나 틀리지 않는 대열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교사 등이 등장한다.
인물들은 자신의 불편함과 불안함을 이기기 위해 강박적으로 행동하고 그 주변 사람들 역시 그 영향을 받는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은 불안한 마음으로 그 사람의 엔딩이 어떻게 끝나는지 지켜본다. 엔딩도 석연치 않다. 갈등이 시원하게 해결되는 단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단편은 [애프턴 부인, 그대의 푸르른 산비탈에 둘러싸여]였다. 파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애프터부인은 바우어 박사에게 매번 운동에 집착하는 자신의 남편 상담을 하러 온다. 남편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며 의처증도 있다. 남편이 자신을 불륜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간 바우어 박사는 곧 그녀에겐 남편이 없으며, 이름 역시 애프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애프턴, 아니 프랜시스 고럼이 왜 애프턴이라는 거짓의 삶을 시작하는지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바우어 박사는 애프턴 부인과 잡혀있는 예약을 취소하지도 않는다. 다만 예약자 명을 고럼으로 바꿀 뿐이다.
하이스미스의 불안은 존재만으로도 영향력을 뿜어낸다. 납득하지 못하지만 이미 심리적으로는 동요된 상태인 것이다. 독자는 한껏 찝찝해진 기분으로 책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 지점이 바로 하이스미스만의 심리전이 통했다는 증거다. 하이스미스가 연구한 인간의 불안과 고뇌는 바로 그 소설 속 인물이 속해 있는 미스터리한 상황과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책 소개에는 이런 말이 소개됐다. 공포는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길한 예감에서 오지만 그 미래는 불행했던 과거에 저당 잡혀 있다. 감정이 바뀌는 순간마다 과거에 겪었던 일을 돌이켜보는 주인공들, 이들은 누구보다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기 위해 미래를 꿈꾸지만 경험의 조각들은 이들을 나쁜 과거로부터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미래가 과거의 반복일 수 있다는 예감은 공간을 이동하고 만나는 사람을 바꾸어도 계속된다.
과거로부터 쌓아온 불안의 데이터에 따라 하이스미스의 단편이 미친 듯이 소름돋는 공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알 수 없는 미스테리 소설이 될 수도 있겠다.
위 글은 아트인사이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2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