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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Nov 03. 2022

안녕, 다녀왔어

사람들에겐 돌아올 곳이 필요해

얼마 전 일이 있어 학교를 방문했다. 졸업하고서 한 번도 간 적이 없으니 거진 1년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그곳에서 친구를 만났다. 함께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녀석을 알고 지낸지 햇수로 딱 14년이라는 걸. 내 생애의 딱 절반을 이 녀석과 알고 지냈다는 걸.


14살부터 20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까지 질기다면 질긴 인연이다. 작은 도시에서 처음 만나 같은 중학교를 나왔고,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과는 다르긴 했지만 대학교도 같았다. 녀석은 졸업 후 대학원을 선택했고, 나는 휴학 후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둘다 학교 근처를 끝까지 떠나지 않았으니 계속 붙어 다녔던 셈이다. 올해 초 내가 졸업을 하고, 회사 근처로 집을 옮기고 나서야 우리는 떨어지게 되었다. 그 후 쏜살같이 시간이 흘렀고, 계절이 돌고 돌아 공기가 차가워진 어느 날에 거짓말처럼 나는 학교에 우연히 방문했다.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자주 가던 식당도 망해버린 이곳이 참 낯설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의 해맑음과 열기가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그 녀석과 다시 만난 것이었다. 그저 만났을 뿐인데 나의 시간은 20살 때로, 17살 때로, 14살 때로 거슬러 올랐다. 그리고 그 모슨 순간에 항상 녀석은 거기 있었다. 내가 가끔씩 그리워했고, 때론 돌아가고 싶었던 그때 그곳에 녀석은 늘 존재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마음이 슬며시 푸근해졌다. 그 애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다녀왔어." 그 말을 좋아한다.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아버지에게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잠이 덜 깬채로 '다녀오세요'라고 말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에 가기 위해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어머니가 비상금이라며 가방 속에 찔러주었던 천원이 떠오른다. 하교 후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며 현관을 열면 따스하게 나를 맞아주던 어머니의 미소와 목소리가 떠오른다. 입대할 때 '다녀올게요'라던 나를 아버지는 '잘 다녀오라' 안아 주셨고, 전역 후 집에 돌아오자 '다녀왔다'는 나를 아버지는 '다녀왔냐'며 안아 주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따뜻한 기억들이 그 말에 담겨 있다. 그렇기에 그 말은 내게 늘 힘을 주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혼자 떨어져 살면서 자연스레 다녀왔다는 말을 할 기회는 줄어들었다. 어차피 그 말을 해봤자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집에 있어도 꼭 길 한 가운데 여전히 서있는 것 같았다. 고단했고, 외로웠다. 만약 그애가 없었다면 나는 더 외롭지 않았을까.


사람들에겐 돌아올 곳이 필요하다. 길을 걷다가 넘어졌을 때, 삶을 살아가다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 아프고 지친 몸을 뉘이고 쉴 수 있는 그런 곳이 필요하다. 그건 학교나 집 같은 장소가 될 수도 있고 가족, 친구, 연인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행복했던 기억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우리에게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돌아올 곳이 없다면 사람들은 방황한다.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까막눈이 되어 길을 헤매다 마침내 스스로 무너진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겐 돌아올 곳이 필요하다. 집이 필요하고, 사람이 필요하다. 따뜻한 기억과 다정한 말이 필요하다.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 다녀왔냐고 말해줄 수 있는 그곳과 그들이 필요하다.



◆제목 : 안녕, 다녀왔어


◆등장인물

1. 서은한

: 카페 알바생..으로 위장한 소호산의 주인. 꼬마 도깨비. 정확히는 인간과 도깨비 사이에서 태어난 반요. 인간에겐 요물이고, 그것들에겐 어중이떠중이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어미인 도깨비의 아들을 잉태했다는 이유로 일찍 죽었고, 아비인 도깨비는 핏덩이던 그에게 소호산의 주인 자리를 무책임하게 맡기고 떠나 버렸다. 덕분에 소호산에 얽매여 지금까지 이곳에서 머물고 있다. 예진과는 J대 건축학과 동기다. 낮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이교수의 비공식 조수로서 작업을 돕고 있다. 밤에는 소호산의 주인으로서 산을 돌보는 중.


2. 박예진

: J대 건축학과 조교. 원래는 나름 잘 나가는 건축사무소에서 모형 제작자로 일하며 건축가가 되기를 꿈꿨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그녀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열정은 사그라들고, 이곳에서 내가 건축가가 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건축을 좋아하는게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그래서 그녀는 사표를 썼고,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로 학교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이교수의 조수가 되었고, 아주 오랜만에 은한과 재회했다. 학부 시절만 하더라도 뛰어난 성적으로 모두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가 취업은커녕 학교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대한 호기심이 솟아 오른다.


3. 이교수

: J대 건축학과 교수. 언뜻 보면 한량 같은 사람이지만 이래 뵈도 젊은 나이에 학과장 자리에 오른 실력도, 운도 출중한 인물이다. 학생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며, 그 덕분에 J대 건축학과 교수 중 인기도 가장 많다. 떠나지 않는 은한을 늘 걱정하고, 방황하는 예진을 학교로 불러들인 사람. 정말 좋은 사람.


4. 묘한

: 아빠 도깨비. 소호가 처음으로 점지한 소호산의 주인. 도망 노비가 쥐고 있던 빗자루에서 태어나 기백년이 넘는 시간을 도깨비로 살던 그는 호수가 사라진 날, 소호산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 결실로 은한을 얻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핏덩이던 은한에게 주인의 자리를 넘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아주 오랜만에 소호산으로 돌아온다.


5. 소호

: 오래된 고목. 소호산의 생명수이자 시작과 끝. 소호산 그 자체이자, 주인을 산에 매어두는 족쇄. 은한의 유일한 벗이자 엄마 같은 존재. 오래 전 학교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호수를 메우면서 산의 주인이었던 메기가 자취를 감추자, 스스로 사라진 호수의 이름을 잇고, 산을 떠돌던 꼬마 도깨비를 주인으로 점지했다. 몇 십년 후, 새로운 산의 주인이 된 은한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한다.


6. 떠도는 이들

: 산과 강, 바다의 옛주인들. 혹은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이들. 자신의 터전과 자리를 잃고 떠돌게 된 이들. 주인의 자리를 탐내고,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을 욕망한다. 그 질척한 감정이 한데 뭉치면, 끝내 거대한 뱀이 되어 원래 주인을 삼키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무한한 욕망을 경계하며 주인들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들을 박해하지만 은한만큼은 그런 그들을 동정하여 소호산에 머물게 두고 있다.


◆ 줄거리

Episode.1 - 여전히 그곳에 있는 아이

Episode.2 - 산의 주인

Episode.3 - 떠날 수 있는 용기

Episode.4 - 괜찮아, 언제든 떠났다가 돌아와

Episode.5 - 사람들에겐 돌아올 곳이 필요해

Episode.6 - 지키고 싶은 마음

Episode.7 -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Episode.8 - 안녕, 다녀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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