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두 번째 병원으로 전원한 후 점차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잠들어 있어서였을까?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온종일 쉬지 않고 건 측 손인 왼손으로 엄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 꼽았다가 역순으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다시 펴는 행동을 했다. 휠체어에서는 목을 큰 원을 그리듯 끊임없이 빙빙 돌렸고, 건 측인 왼쪽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하며 까딱까딱 앞뒤로 흔들었다. 엄마가 다리를 흔들 때마다 나는 휠체어의 삐거덕거리는 소리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곤 했다.
치료 시간에도 엄마의 문제 행동은 계속되었다. 재활 치료 시간은 25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에도 엄마는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보호자는 치료 시간에 치료실 밖으로 나가 있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엄마가 치료를 거부하는 행위가 점점 심해져 나는 치료 시간에도 엄마 옆에서 선생님들을 도와야 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었던 건 엄마가 콧줄을 뽑는 행동이었다. 콧줄의 이물감 때문에 힘들었는지 자꾸만 엄마의 왼손이 콧줄로 갔다. 치매 장갑이라고도 불리는 억제 장갑으로 엄마 손을 묶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리만큼 싫었지만, 엄마의 안전을 위해서 묶을 수밖에 없었다. 오른손은 마비가 와서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태인데 건 측인 왼손의 자유까지 앗아야 하는 상황이 답답했다. 더군다나 왼쪽 팔에는 혈액투석을 하기 위한 동정맥루 수술까지 해두었기 때문에 간호사님이 장갑을 너무 세게 묶으면 혈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엄마가 콧줄을 뽑을 때마다 간호사님들은 나를 무능력한 보호자로 만들었다.
“어머니 장갑 좀 잘 묶어주세요. 이렇게 계속 콧줄 빼시면 감염될 수 있어서 위험해요.”
콧줄을 끼워주는 인턴 선생님과 하루에 세 번 만나는 날도 있었다. 보통 콧줄은 3~4주에 한 번 정도 교체하는 것이 기본인데 무려 세 번을 하루만에 갈아 끼운 것이다. 선생님이 콧줄을 넣으려고 시도하면 엄마는 온몸으로 거부했다. 한 손으론 엄마의 왼팔을 잡았고, 또 다른 한 손으론 엄마가 얼굴을 움직이지 못하게 이마를 손바닥으로 눌러야 했다. 의료진들과 마주할 때 느껴야 했던 그 민망함과 수치심, 힘으로 엄마를 제압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내 마음속에서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장갑을 세게 묶으면 엄마 혈관에 문제가 생길까 봐 겁이 났고, 약하게 묶자니 엄마는 나에게 몇 초의 시간도 주지 않고 치아를 사용해 장갑을 풀어 콧줄을 뽑아버렸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나와 같은 칸에 함께 들어간 적도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상황에서도 콧줄을 뽑아버렸다.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엄마에게 콧줄을 뽑으면 안 된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설명했다. 엄마는 언어 기능을 관장하는 뇌의 좌측 부위를 다쳤기에 내 손짓과 몸짓 그리고 표정을 최대한 활용했다. 엄마의 콧줄을 한 번 가리키고, 콧줄을 뽑는 시늉을 하고 나서 표정을 최대한 일그러뜨렸다. 그리곤 두 팔로 크게 엑스를 만들어 보이며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이며 본인이 다 이해했음을 나에게 표현했지만, 신뢰도가 0%에 수렴하는 대답이었다.
주치의 교수님께 엄마의 이런 행동들의 원인에 대해서 여쭈어보았다. 다행히 내가 걱정하고 있었던 혈관성 치매는 아니라고 했다. 수술 후 나타나는 섬망 증상이니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했다. 추가적인 약물이나 주사가 필요한 정도의 증상은 아니니 좀 더 지켜보자고만 하셨다.
섬망은 의식과 지남력(날짜, 장소, 사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기복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질환입니다. 주의력 저하, 언어력 저하 등 인지 기능 전반의 장애와 정신병적 장애가 나타납니다. 섬망은 혼돈(confusion)과 비슷하지만, 과다행동(안절부절못함, 잠을 안 잠, 소리 지름, 주사기를 빼냄)과 생생한 환각, 초조함, 떨림 등이 자주 나타납니다. 섬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갑자기 발생합니다. (출처: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내 인내심의 밑바닥이 보일 때마다 ‘엄마는 아기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렇게 내 감정을 컨트롤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새벽에 잠에서 깨 엄마 손에서 이탈한 억제 장갑과 침대 밑바닥에 떨어져 있는 콧줄을 보면 숨죽여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뇌출혈을 겪기 이전의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엄마가 콧줄을 뽑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지든지 콧줄을 빼고 입으로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연하 기능이 향상하든지 둘 중 하나는 현실이 되어야 이 전쟁이 끝날 것 같았다.
콧줄과의 전쟁으로 괴로운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연하 재활 치료사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었다. 연하 검사상 엄마는 삼킴이 아주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맞은 편에 계신 간병사님이 그 소식에 대해 듣더니 나에게 말을 건넸다.
“원래 연하 검사에서 잘 못 삼키거나 삼키는 것 자체를 하기까지 오래 걸릴 것 같으면 의사 선생님이 바로 뱃줄(위루술) 시술을 하자고 했을 텐데 그런 말이 안 나온 거 보면 조금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아요. 우리 환자는 삼킴이 잘 안돼서 안타깝게도 뱃줄 시술 일정이 벌써 잡혔어요.”
위루술은 입으로 음식물을 충분히 섭취할 수 없는 경우 배의 피부를 통하여 위나 소장에 직접 관을 삽입하는 것입니다. (출처:인제대학교 해운대 백병원-위루술 질환 정보)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건가 싶었다. 하늘이 나에게 숨을 쉴 수 있을 정도 만큼의 여유는 주는 듯했다. 엄마가 미량의 음식이었지만 삼킴을 제대로 했다는 말에 조금의 에너지가 생겼다. 아가처럼 잠들어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볼에 뽀뽀를 하며 내일은 엄마가 치료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