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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옥 Jan 22. 2022

10. 뺨을 맞아도 삼킴 연습

 엄마의 섬망 증상은 짧은 시간 안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증상과 별개로 엄마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회복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내 옷을 두 손가락으로 끌어당겨 옷의 촉감을 느끼기도 하고 옷의 재질을 유심히 관찰도 하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집중을 하다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면 엄마는 고개를 돌려 그 소리 자극 쪽으로 쳐다보았고, 내가 억제 장갑으로 엄마 손을 묶으려고 하는 행동을 감지하면 장갑을 이불속으로 숨기기도 했다. 점차 목도 안정적으로 가누게 되면서 엄마는 와상 환자용 휠체어가 아닌 일반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태어난 엄마를 내가 만난  2개월이 흐른 5월이 되어서야 엄마는 나와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허공만 바라보는 엄마와 하던 일방적인 소통에서 벗어나 예스노 응답을 하는 엄마와 쌍방향의 소통을   있었다. 물론 응답의 신뢰도는 현저히 낮았지만 말이다. 엄마는 완전한  맞춤을 해주는  아니었지만 이제 적어도  얼굴 쪽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끄덕 하거나 도리도리 저었다.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논하던 때보다는 많이 나아진 모습을 보여준 엄마에게 감사했다. 초보 간병인인 내가 아주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가끔 했다. 하지만 엄마가 콧줄을 뺄 때마다 내가 무력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엄마와 내가 걷고 있는 듯했다.




 엄마는 삼킴에 도움이 되는 연하 전기 자극 치료를 하루에 한 타임(30분), 1:1 연하 치료를 하루에 한 타임 받았다. 전기 자극 치료는 삼킴 작용에 쓰이는 근육에 전류를 보내 신경을 자극하는 치료 방법이다. 기계로 하는 치료이기 때문에 치료사 선생님이 엄마 목과 턱 부위에 패드를 붙이고 전류 세기와 시간만 세팅을 해주면 병실에서 혹은 다른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연하 전기 자극 치료 모습


 1:1 연하 치료는 치료사 선생님이 직접 삼킴에 도움이 되는 자극을 하는 치료가 주를 이루었다. 엄마가 치료에 협조를 잘하지 못했기에 나는 엄마와 항상 치료실로 동행했다. 엄마가 침을 한 번 삼키는 것은 선생님의 노력과 인내가 요구되는 행위였다.


“김지혜 님 허리는 세우시고, 고개를 살짝 들어보세요. 눈 뜨고 제 눈 한 번만 봐주세요. 제가 지금 어머님 목이랑 턱에 마사지를 해 드리는 건 침을 잘 삼킬 수 있게 도와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꿀꺽 한 번 해 볼까요? 꾸울-꺽! 한 번만 삼켜봐요. 한 번만 삼키시면 오늘 치료는 빨리 마쳐 드릴게요. 고개 그만 돌리시고 앞을 보고 조금만 숙여보세요.”


 부단한 노력 끝에 엄마가 겨우 한 번 침을 꿀꺽 삼키면 선생님은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엄마를 칭찬했다. 선생님이 나무 설압자에 거즈를 감아 레몬즙을 묻혀 입안 여기저기를 자극해 삼킴을 유도했는데 엄마는 얼굴을 상하좌우로 흔들며 선생님의 손길을 피했다. 종종 선생님의 손목을 세게 잡고 밀어내며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마다 안간힘을 써서 엄마의 손을 선생님의 손목으로부터 떼어내야 했다. 내가 귀까지 빨개진 얼굴을 하고선 선생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엄마를 칭찬으로 격려해주시는데 엄마가 이렇게 비협조적이셔서 속상하네요. 선생님, 죄송해요.”


 혹시나 그 상황에서 내가 무안해질까 봐 선생님은 도리어 나를 위로하곤 했다.


 “아니에요. 김지혜 님 정도면 정말 얌전하신 편이에요. 어떤 환자분은 치료 시간에 저를 때리기도 하셔요. 보호자님께서 이래저래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엄마의 연하 치료뿐만 아니라 내 마음 치료까지 도맡았다.




 엄마가 재활과 투석으로 빼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평일에 비해 다소 한가한 일요일 오후였다. 엄마에게 삼킴 연습을 좀 더 시켜드리고 싶어 엄마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 삼킴에 좋은 자세로 앉을 수 있게 도왔다. 미리 준비해둔 설압자로 엄마 입 안을 자극하려고 엄마에게 입을 벌려달라고 했지만 예상대로 설압자를 입안에 넣기도 전에 엄마는 내게서 얼굴을 최대한 멀리하며 피했고, 설압자를 든 내 손을 밀어냈다. 그런 엄마의 손을 내 왼손으로 저지하며 오른손으로는 설압자를 들고 엄마 입 안에 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내가 저지하고 있던 엄마의 왼손이 순간적으로 내 손을 빠져나가 내 오른쪽 뺨으로 향했다. 가볍게 쥐어진 주먹이었지만 꽤나 아팠다. 다리에 힘이 풀려 보호자 침대 끄트머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처음이었다. 엄마가 혹시나라도 슬퍼할까 봐 한 번도 엄마 앞에서 운 적은 없었는데 그때는 눈물을 참을 새도 없었다. 날 더 슬프게 했던 건 엄마가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취한 반응이었다. 엄마는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쳐다보더니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려 평소처럼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며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모르는 사람을 보는 듯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엄마의 모습은 아무리 아픈 엄마라곤 하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연하 연습은 멈출 수 없었다. 그만큼 나에게 콧줄을 빼는 일은 간절했다. 다시 뺨을 맞을 상황이 생길지언정 정신을 차려 설압자를 다시 손에 쥐고 엄마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엄마는 입을 벌렸고, 내가 설압자로 입 안을 자극하는 몇 초 동안 잘 견뎌냈다.


 그날 이후로 엄마에게 뺨을 맞은 적은 없었지만 여전히 엄마는 삼킴 연습을 힘들어했다. 저녁마다 연습을 하려고 하는 나와 하기 싫어하는 엄마의 대치는 지속되었다. 물론 거의 매일 내가 승리자였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조금씩이라도 연습을 하다 보니 엄마의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명확하게 들리는 빈도가 점점 높아졌다. 엄마와의 ‘삼킴 공부’ 여정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몰랐지만 이 여정의 시작점에서 보다는 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미지 출처:www.vitalstim.co.uk


첫 글부터 보기 : https://brunch.co.kr/@klavierbbo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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