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노신 May 21. 2021

첫사랑과 첫 직장

건너뛸 수 없는 '첫'

첫 직장을 다녔던 동네에 여전히 거주하고 있는 나는 아침 8-9시 사이(출근시간), 그리고 저녁 6-7시 사이(퇴근시간) 동네 외출을 삼간다.

예전 직장 사람을 마주치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살갑게 인사나 안부를 나눌 사이가 아니라고 느끼게 됐다. 나는 떠나왔지만, 아직도 동일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정서도 거의 남지 않았음이 물론이다.


첫 직장을 그만두면서 나는 생각했었다.

"이보다 최악은 없을 거야. 모든 게 잘못되어 있어. 이 현실을 바꾸려면 내가 이곳을 나가는 수밖에 없어."


그러다 두 번째 직장을 다니면서 조금쯤 알게 되었다.

영속과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의 본질이 그러하며, 각 사람은 그 안에서 조화롭기가 원래 어렵다는 것을.

첫 직장생활과 두 번째 직장생활을 비교했을 때 달랐던 건 나 자신이었다. 처음보다는 조금 더 능숙하고 여유로워졌고, 일도 관계도 더 생산적으로 주도해 나갈 수 있었다.


그때쯤에야 비로소  직장에서 겪은 수난과 그때의  자신을 이해하게 됐다.

처음이 아니었다면 그 정도로 엉망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의 나에게는 분별력이나 조절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첫사랑도 그러했다. 처음이기에 어떠한 기준도 없었고 적절한 거리감을 조절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면 도저히 하지 않을 실수를 하고 필요 이상으로 상처 받았다. 하지만 그 경험이 있었기에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아무리 최악이어도 처음이 없이는 다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 아무리 공신력 있는 삶의 법칙이 존재하더라도 스스로 겪기 전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사람은 모두 다르며, 누구나 각자의 것을 사는 삶이라는 종목에서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한때는 조금이라도 늦거나 실수하는 것이 두려웠고 바로잡지 못할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 모두가 조금씩 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나를 힘들게   직장생활은 나에게 살아갈 삶의 방식을 절박하게 고민하게 만들었고, 지금 나는 그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나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첫 직장은 첫사랑처럼 잘 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 처음을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되어 이전에 볼 수 없던 것을 보고 할 수 없던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걸.


그러니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려 하지 말자. 처음은 원래 서투르고 아픈 것이니까.

처음을 망쳤다고 해서 거기에 매달리지도 말자. 뜻밖에 다가온 다음은 더 아름다울지도 모르니까.


작가의 이전글 가사 노동 끝판왕, 냉장고 청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