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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Dec 17. 2021

영감을 주는 나의 친구

혈육에게 우정을 느끼는 일에 대하여

나와 동생은 어린 시절부터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오목 조목 뜯어보면 눈, 코, 입과 얼굴형이 모두 출처가 다른데 (나는 아빠, 동생은 엄마다) 한 집에서 살다 보니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혼동하여 제 이름이 아닌 서로의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늘 같은 반응이었다.

"저희, 안 닮았거든요!?"




이처럼 서로가 느끼는 서로는 아주 뚜렷하게 구분되고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많았기에 '저 사람저 인간은 어느 별에서 왔나' 생각하며 눈을 흘길 때가 많았다.

사고방식도, 취향도, 입맛도, 뭐 하나 통하는 것이 없는 자매보단 동질감을 공유하는 친구와 노는 것이 훨씬 재밌었다. 성인이 되기까지 동생과 둘이서 어디로 놀러 가거나, 서로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잘 없다. 그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살아왔다.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각자의 친구보다 더 서로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20 중반 이후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어느새 친구보다도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남자친구랑 다퉜을 , 직장에서 있었던 , 경제적인 고민, 부모님과 관련된 문제 등등 친구와 나누기에 민감하고 애매한 일부터 친구와 나누어도 충분할 일까지 동생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약간은 '젊은 꼰대다' 싶을 때가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기대거나 뭔가를 요구하지 못할 때인데, 나보다 3살이나 어린 동생이 든든하고 때론 언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심지어 존경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을 4번이나  흔치 않은 경력을 갖고 있다. 말이 4수이지, 동생의 시간을 곁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이따금 '어떻게 버텼을까'싶은 생각이 든다. 4번의 수능을 치르며 동생은 희망하던 진로의 방향이 바뀌었다. 20살에 대학을 진학한 친구들은 어느덧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에 동생은 신입생이 되어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동생의 진가를 알게    이후이다. 어리고 미숙한 줄만 알았는데 늦게 시작한 대학생활에서 누구보다 단단한 내공으로 자기의 길을 가며 학교생활에서도, 대외적으로도 이런저런 성과를 내는 동생이 낯설고 신기했다.

그제야 나는 동생이 오래 머물렀던 알 속에서의 시간이 그 아이에게 남긴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남들의 눈에는 3번이나 입시에 실패한 것이지만, 그 애는 한해 한해 자신과 싸우며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생이 휴학을 하고 자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약국에서 카운터를 보는 일을 했는데, 처음에는 다른 직원들의 텃세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다. 그러나  고교시절 익힌 외국어 능력을 활용해 외국인 손님들을 응대하게 되면서 직원들의 인정과 함께 남다른 대우를 받게 되었다. 긍정적인 생활 태도와 특유의 낙천성으로 손님들에게도 호감을 사며 즐겁게 지냈다.

1년이 지나 동생이 복학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었을 , 사장님은 아쉬워하며 동생에게 약국 블로그 관리하는 일을 제안하며 급여와 함께 장학금 지원까지 은밀히(?) 제안했다.  일을 수락한 동생은  뒤로 약속한 기간 동안 블로그에 약과 관련한 글을 연재하였다. 동생이  글이 업로드되었다는 알림을 받으면 종종 글을 읽어보았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일의 이면을 잘 알지 못했다.


동생이 복학하고 첫 중간고사로 바쁘던 무렵 동생의 대학 근처에 갔다가 자취방에 들렀다. 그런데 책상 한켠에 <일반인이 잘 모르는 약에 관한 상식>과 같은 부류의 책들이 한 무더기나 빼곡히 꽂혀있는 것이다.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  책들을  구입한 거냐고 물으니, 자신이  모르는 것도 많고 약국의 평판과 직결될  있으니 조심스러워 참고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에 받는 돈이 얼마, 라는 식으로 계산을 했을  손해가    같았다. 게다가 스크롤  번에 간단히 훑고 넘어갈 정보성 글임에도 하루에 4-5시간을 들여 쓰느라 잠자는 시간이 부족해 고생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동생이 어떻게 완고하고 무뚝뚝한 약국 사장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자신이 가는 자리를 확실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없던 기회도 얻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받는 만큼만 주려 하는 요즘과 같은 세태에서 얼마나 드문 사람으로 보였을까. 문득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가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이후로 나는 동생이 눈치채지 못하게 동생을 존경하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자매 중에서 집안 어른들의 기대를  많이 받은 쪽은 나였다. 동생보다  금방 배우고, 금세 성과를 냈다. 반면에 동생은 무엇 하나 쉽게 얻은 적이 없었다. 나에게 쏠린 주목 때문에 관심 밖에 있기 일쑤였고 기억력이 좋지 않아 하나를 익히려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수십  연습했다. 혼자서 실망하는 때도 많았을 것이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던  시간들이 이제는  아이의 견고한 울타리가  것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감동하고 통찰한다.


어릴 적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자란 동생을, 이제는 내가 바라보며 배운다.


누군가 우리에게 닮았다는 말을 하면 습관처럼 "안 닮았어요" 말을 하면서도,

이제는 내심 흐뭇한 웃음을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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