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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Feb 06. 2022

매일 6번 되살아나는 벌레,

사람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일 수록 더 잘 기억하는 법이다.


올해로 5년째 살고 있는 이 오피스텔에서 나는 1년에 한, 두 번 꼴로 검고 빠른 그 벌레를 마주쳐왔다.


나타난 시간대나 계절, 출몰한 위치, 크기 등에 각각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들이 내 정서에 미친 파장은 모두 동일하게 '엄청났다'. 또한 모두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맞서고 그 싸움터를 정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하나하나의 기억이 모두 뇌리에 짜릿하게 각인되어 있다.


이 불청객이 남긴 후유증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하루에도 몇 번씩 벌레가 발견되었던 자리에 우연히 눈이 멎을 때마다 그곳을 기어가고 있었거나 거기에서 여유롭게 더듬이를 움직이고 있던 그들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해낼 수 있고 그렇게 그들은 흰 벽 위를 환영처럼 어른거리며 현재로 소환된다.

방 가운데에 서서 하나하나 그 자리를 짚어가며 세어보니 모두 여섯 군데다. 그렇게 하루에도 적어도 여섯 번, 그들은 이미 내쫓긴 이 방안에 살아났다가 사라진다.


벌레는 이미 예전에 죽었지만 그들의 생명력은 다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 안에서 그들이 실제로 살았던 삶보다 더 긴 삶을 이어가고 있다.


'벌레'처럼 이미 끝장나버린 어떤 일들도 그렇게 나와 함께 살아간다. 나를 경악케 하고, 당혹게 하고, 두렵게 했던 일들이 여전히 내 의지와 무관하게 머릿속을 기어 다니고 있다. 

이건 차라리 내가 그들에게 먹이를 줘가며 기르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봄이 다가오면 나는 벌레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셀프 방역을 한다. 들어올만한 문 틈새를 막고, 벌어진 벽과 천장 사이를 보수하고, 화장실 하수구 망을 교체하고, 몇 군데 약도 놓는다.

그렇게 하는 일이 내가 막고자 하는 일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전보다 안전해진 기분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두고 싶지 않은 일들을 꺼려지더라도 하나씩 건드려보고 수리하는 마음의 방역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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