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일지라도 높은 습도는 늘 적응하기 어려웠다. 3분 전 도착이라는 알림을 보고 부리나케 정류장에 뛰어왔지만 도착 예정 시간은 그대로였다. 뛸 때 느껴지지 않던 뜨거운 공기가 온몸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마에 맺힌 땀을 연신 닦아내며, 좋아하는 계절의 초입에서 나는 말했다.
“이래서 여름은 정말 싫어”
샤워하고 몸을 닦을 때면 부쩍 서늘한 공기가 느껴지고 잠을 청하려 침대에 누우면 여름 내내 발로 밀어버린 이불을 찾기 시작했다. 별반 다를 것 없는 하늘색이지만 제법 차가운 바람이 셔츠 안까지 들어온다. 고개를 들어 나뭇잎의 색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아챌 것도 없이 길바닥 마저 떨어진 은행과 감들로 알록달록 물이 들었다. 성큼 다가온 새로운 계절에 유독 덥게 느껴졌던 올여름이 한순간에 그리워졌다. 땀을 싹 씻어내고 먹었던 수박도 집에 오면 서늘함이 느껴졌던 에어컨의 온도도 초록이 가득한 산자락도.
사람은 역시 참 간사해.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은 그것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느껴질 때 생겨났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걱정 없이 놀다 각자 저녁을 먹으러 들어갈 때 느꼈던 초저녁의 공기, 대학생 때 떠났던 배낭여행과 같은 “순간”은 물론 감정을 주고받았던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계절만큼은 다시 돌아올 걸 알면서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그 끝에서 매번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한다. 여러 색이 밀물과 썰물처럼 흘러감을 반복할 때 간사했던 내 마음은 어떤 색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