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갖게 된 취미생활에 방점을 찍고 싶었다. 한 번도 뛴 적 없는 거리를 뛰며 피어오르는 잡념들을 모조리 잠재우고 싶었다. 혹자가 말한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나면 생기는 자존감과 자신감도 느껴보고도 싶었다. 하고 싶은 것들이 쌓이자 망설이는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았다.
서늘해진 새벽 공기를 느끼며 대회장에 도착했다. 제대로 준비를 안 한 사람치고는 염치없게도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물품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출발지로 걸음을 옮기는 내내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설렘과 한 번도 뛰어보지 못한 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섞인 그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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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외친 카운트다운이 위안이라도 됐는지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선을 지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뛰고 응원을 해줘도 월드컵경기장부터 몽촌토성역까지 엄두도 안 나는 거리를 끝까지 뛰어야 하는 건 나였다. 새삼 한계에 도전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최근에 본 적이 있었나 싶어 낯설다는 생각이 스쳤다.
11월임에도 다행히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다. 궂은 날씨 핑계를 댈 수 없는 환경에 더더욱 끝까지 달려야 하는 이유가 늘었다. 혼자 뛰어본 최대 거리 25km를 넘자 사뭇 다른 허벅지 통증과 넋 나감이 지속됐다. 포기하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나 또한 굴뚝 같이 그 마음이 샘솟았고 몸에는 이유 모를 닭살이 돋기도 했다. 1km가 정말 멀게 느껴지던 레이스 후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마음으로 뛰었는 지도 기억이 안 난다. 정신이 다시 또렷해진 순간은 마지막 약 500m의 직선주로였다. 어렴풋이 보이는 보랏빛의 피니시 라인을 보자 어디서 힘이 났는지 모두가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삐-
해냈다. 예상 기록보다 좋지 않은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힘들면 합리화와 함께 현실에 안주해 버렸던 어른이 된 나는 이런 경험이 꼭 필요했다. 걸음을 멈추자 다리 통증이 물밀듯이 밀려왔음에도 웃음이 났다.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그 순간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